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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국 고 대 문 학

고 대 시 가

중국문학과 그 특징

 

과거와 현재에 걸쳐 격동적인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중국은 여전히 전통을 중시하며 아주 잘 보존해 온 나라이다. 유구한 역사와 영속성, 끊임없는 혁신을 특징으로 하는 중국문화는 적어도 3천년 동안 기본적으로 그 균일성을 유지해 왔다. 고고자료에 의하면 일찍이 기원전 1400년에 중국민족들은 이미 상당히 선진적인 문자 체계와 우수한 청동기 제련 및 양잠 제사(製絲) 기술을 중심으로 대단한 문명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기원전 3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800여년간 지속된 주(周)나라 시대에는 중세 유럽의 봉건제도와 매우 흡사한 정치 사회 구조를 바탕으로 고대 중국문명을 건설하였다. 이때에는 중국의 고전철학이 매우 활기를 띠어 지식계층들 사이에서 새롭게 탄생한 위대한 사상가들이 통치자와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이러한 철학계의 번영에 필적할 만한 것은 시가(詩歌) 뿐이었으니, 그것들은 황하(黃河)장강(長江) 유역에서 성대하게 발전하였다.

중국문화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한대(漢代)로부터 당송(唐宋)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시 2000여년을 거쳤다. 수십 세기 동안 중국은 내란과 외침으로 인한 정권의 붕괴와 왕조의 교체를 겪었으며, 선비족 돌궐족(4~6세기), 거란족과 여진족(10~13세기) 등 만리장성 이북의 소수민족이 오랫동안 북방을 통치하였다. 그리고 그후 다시 몽고족만주족이 400여년간 중국을 통치하였다. 이렇게 한족문화는 엄청난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약화되지도 않고 그들에 의해 소멸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침으로써 반대로 그들이 한족문화에 동화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원래의 뿌리에 신선한 혈액을 공급해 준 결과가 되었다.

중국문명은 외래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중앙아시아에서 전래된 불교는 중국민족들에게 새로운 생활관과 사상을 제공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회화와 조소, 문학 방면에서 그들의 창조성을 촉진시켰다. 근대와 현대에 서양의 과학기술은 세계와 우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향상시켜 주었으며, 중국민족들에게는 불변의 자연규칙과 사회환경의 결정적 요소 및 그들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러한 사상들은 모두 현대 중국문학 속에 반영되었다. 이와 같이 외국에서 들어온 영양분은 중국문화의 발전에 주기적으로 생기를 불어넣어 그것의 침체와 쇠락을 방지해 주었던 것이다. 외래 영향을 흡수한 동시에 중국민족은 자신들의 전통문화도 온전하게 잘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내실을 다져 나갔다.

중국적이든 이국적이든 그 어떠한 요소든지간에 중국문명의 거대한 틀 속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것의 핵심은 공자와 맹자로부터 계승되어 온 유가사상을 근본으로 하였다. 특히 송명(宋明) 양대의 신유가학파(성리학파)와 같은 후세의 학자들은 조화와 절충이라는 전형적인 방식으로써 도가(道家)와 불교의 학설을 선택적으로 유가학설에 도입하였다. 그후 성리학과 그것의 공자 경전 저작에 대한 해석은 과거시험에 응시하기 위한 중요한 모범 참고서가 되었으며, 과거시험은 유가학설의 지식을 필요로 하였다. 과거에 합격한 유생은 정부로부터 관직을 제수받았을 뿐만 아니라 야심과 재주가 뛰어나면 권력을 장악하는 지위까지 오를 수도 있었기 때문에 과거시험의 기본 자료였던 유가경전은 마침내 미래의 사대부들이 가장 중시하는 학문이 되었던 것이다.

공자의 학설은 개인 수양과 사회적 도덕을 선양하는 실용적인 도덕철학으로 중국의 민족성을 형상화하여, 사회, 가정, 문학, 예술 등 각 영역으로 파급되었다. 넓은 의미에서 말하면 중국문학은 대부분 유가문학이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유가학설은 전통을 중시하는 작가들과 전통을 반대하는 작가들의 생활과 사상에 모두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태평성세에는 유학이 번성하고, 난세에는 도교와 불교가 번성하여 신도가 급증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개인 생활 속에서도 사업적으로 성공하면 유가의 정통관점에 대한 신념이 강화되고, 실패하면 다른 방도를 찾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 도가와 불교의 탈속적 관념 속에 빠져들었다. 바로 이러한 반유가적 관념이 문학 영역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그들은 이국적이고 특이한 곳에서 영감을 얻을 때도 있었지만, 평범한 백성들 속에서 영감을 얻을 때가 더 많았다.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백성들의 지혜와 감정은 오랫동안 사용하여 고갈된 문학적 소재를 끊임없이 보충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가들은 줄곧 숭고한 유가사상의 신봉자였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권선징악을 교육하기 위해 문학을 공자학설의 선전 도구로 삼았다. 이로 인하여 중국문학 작품 속에는 언제나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 내포되었던 것이다. 문학비평 속에서 미학적 가치에 판단은 항상 완벽한 도덕성 다음에 놓였다. 수천 여년간 중국에는 훈계하고 권유하는 등의 도덕적인 논문이 엄청나게 축적되었다. 현대의 비평가들이 그것들의 가치를 아무리 폄하하려 해도, 그것들이 중국인의 사상과 행위를 좌우하는 역량은 거대하고도 영속적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역사도 지난 일을 거울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도덕과 정치적 의미를 갖춤으로써 더욱 높은 중시를 받았다. 중국서적의 4대분류 중의 하나인 사(史)의 위치는 경(經) 다음이고 자(子)와 집(集) 앞이다. 중국의 문학저작은 사료(史料)가 내실있고 방대하며 인물과 역사 전고도 풍부하다. 이에 관한 지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국학자들의 수준을 가늠하는 측도가 되고 있다.

유가 윤리관념의 영향으로 중국인들은 특별히 강렬한 시비관(是非觀)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시비관은 자연스럽게 문학 속에 표현되었다. 도덕에 대한 관심은 시인들에게 권선징악 사상을 심어주었는데 이러한 점은 중국문학과 희랍문학이 일치한다.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있고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나쁜 결과가 있다는 관념은 유가 철학가들에 의해 널리 선양되었고, 불교와 도교에서는 천당과 지옥으로 표출되었으니, 중국의 이 3대 사상체계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공통된 신념 위에서 융합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철학관이나 종교관에 관계 없이 이것은 사람들이 일관되게 지켜 온 보편적인 원칙이었다. 이러한 신념은 문학 속에 대대적으로 표현되어 서양과 같은 비극적 미학 의식의 발전을 저해하였다. 사람이 운명의 장난으로 현실 속에서 갖은 불행을 겪을 수도 있지만, 작가들은 문학창작의 세계에서 이러한 비통한 분위기를 씻어주어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고 그것을 미덕으로 승화시켜 적시에 보상을 받도록 해주었다. 중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문학작품 속에서 선량과 도덕이 최후의 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독자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그 작품의 흠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중국인들에게 문학의 실용주의 관점에 대한 신념을 강화시켜 주었다. 중국인들은 서양인들이 처음에 말한 것처럼 결코 신비한 색채를 띤 불가사의한 동양인이 아니라, 과거나 현재에 있어서 모두 현실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공상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공자의 학설을 옹호하면서 유미주의가 아닌 공리주의 문학을 창작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관을 버렸다. 중국 작가들은 철학과 역사가 인류에게 실용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문학에 활용하였다. 중국문학에는 조고(詔誥), 장표(章表), 서발(序跋), 찬송(贊頌), 지명(志銘) 등과 같은 공리주의적 산문 체재가 풍부하다. 이 모든 것들은 전부 심혈을 기울여 쓴 문체로 문학 창작의 모범적인 문장으로 간주되었다. 서간문은 문인들에 의해 완성된 유용한 예술 영역이다. 자연에 대한 미려한 묘사 외에도 유기문학(遊記文學)에는 인물에 대한 정취가 풍부하고, 생활에 대한 도덕적 반성과 철학적 탐색이 환하게 빛을 발할 때도 있다. 소설 속에서 자연주의적 서사 기교와 풍요로운 물질생활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그것을 현실주의 문학의 전형이 되게 하였으며, 나아가서 중국의 가정과 사회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료가 되게 하였다. 평화(評話: 한 사람이 그 지방의 사투리로 고사 따위를 이야기하는 민간 문에의 하나)의 전통을 착실히 지키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설서인(說書人)은 독자의 절친한 친구역을 맡으면서 기지와 익살 넘치는 언어로 거침없이 충고를 늘어놓는다.

서양에서 시가창작은 흔히 가장 상상력이 풍부하고 숭고한 문학형식으로 간주되지만, 중국에서 그것은 지식인의 일상적인 일로 간주되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시인들은 공허함을 좋아하는 서양의 시인들과는 달리 착실하고 세속적이다. 그들은 시인의 고뇌와 유미주의 추구에 대한 방해도 받지 않고 비현실 세계에 혼이 뺏겨 정신을 잃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일상생활과 일에 관한 제재를 충분히 시에 응용한다. 거의 대부분의 중국문인들은 모두 즉흥적으로 시를 짓는 시인들이다. 중국에서 시를 지을 수 있는 기회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궁정과 종교 행사, 관혼상제, 국화나 모란 등의 꽃축제, 교제연회, 명승고적 유람 등의 자리에서 시가는 자기의 마음을 가장 잘 표출할 수 있는 언어인 것이다.

소설과 희곡 속에도 시가가 많이 들어있는 것을 보면 시가가 얼마나 널리 유행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전기(傳奇)라 불리는 초기의 단편소설에는 시가가 많이 섞여 있다. 중국의 고전희곡은 거의 예외 없이 시극(詩劇)이며, 곡(曲)은 극본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구성 부분이자 정수이다. 희곡 비평에서는 흔히 줄거리와 구성, 인물묘사에 대해 비평하지 않고, 그 안에서 대사의 감정적 색채를 더해준 시나 사(詞)에 대해 비평하였다. 중국에서 시가와 산문 사이에는 넘지 못할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며, 가장 우수하면서 가장 의미 있는 중국문학 작품은 대부분은 시로 쓰여졌다.

중국시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간결함이고, 가장 유행한 형식은 절구(絶句: 5언절구와 7언절구, 4구체)와 율시(律詩: 5언율시와 7언율시, 8구체)이다. 중국인들은 시가에서 군더더기 없이 깔금한 스타일을 중시한다. 한정된 글자 속에 정미한 기교를 다하는 것이 뛰어난 예술창작의 첫째 요건이었기 때문에 예술적 효과를 더하기 위해 글자마다 세밀하게 퇴고해야만 했다. 이백(李白) 보다 조금 뒤의 인물인 당대 시인 가도(賈島)가 시를 지으면서 한 글자 때문에 얼마나 고심했는지에 대해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하루는 가도가 번잡한 경성 장안(長安)에서 길을 가고 있었는데, 손에 막대기를 쥐고 박자를 치면서 가다가 고관을 태운 가마와 부딪혔다. 이때 그는 "승고월하문(僧鼓月下門: 승려가 달 아래서 문을 두드린다)"이란 싯구의 두 번 째 글자에 "퇴(推: 밀다)"자를 써서 "문을 밀고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 좋을지 "고(鼓: 두드리다)"자를 써서 "문을 두드린다"고 하는 것이 좋을지 한창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는 손으로 문을 미는 시늉도 해보고 두드리는 시늉도 하며 어느 것이 좋을지 깊이 생각에 잠긴 터에 그만 이 고관의 행차를 방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가마에 앉아 있던 고관은 바로 유명한 작가 한유(韓愈)였다. 그는 이 가난한 시인을 용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고(敲)"자를 쓰는게 더 좋겠다고 권하여 시인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도 하였다. 이로부터 "퇴고(推敲)"라는 말은 작가가 글을 쓸 때 세심하게 살펴서 교정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중국시가에 들어 있는 다른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음악이다. 시가의 주요 형식인 시(詩), 사(詞), 곡(曲)은 원래 음악 반주에 맞춰 노래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음악과 시가 분리된 후에 고정된 운율을 기초로 한 복잡한 작시법이 형성되었다. 비록 더 이상 음악에 맞춰 노래부를 수는 없게 되었지만, 중국시를 높은 소리로 낭송한 것은 고대 희랍의 시와 대체로 상통한다. 옛날의 서생은 시의 음악성을 충분히 살려 고개를 흔들며 큰소리로 한글자 한글자 길게 읊는 것이 일종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가의 낭송 예술은 지금은 이미 실전되었다.

중국시인들은 간결함, 정교함, 음악성이란 이 세 가지 원칙으로 시가를 창작하면서 매력적인 문자를 이용하여 시가의 선경(仙境)을 만들려고 하였다. 평범함을 신비함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의 작은 세계 속에는 정겨운 친구나 좋은 시절, 아름다운 산수풍경 등과 같은 이러한 신비한 경지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향살이를 할 때 시가는 우리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중국시인들은 관직에서 쫓겨나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없었을 때, 항상 친구와 옛일, 고향을 그리워하며 흘러간 청춘을 아쉬워했다. 이러한 감정들은 모두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이지만 일단 그것들이 시인의 입에서 발출되어 나오면 풍부한 정취와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감동시킨다. 중국의 작가들은 보잘 것 없는 것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기적을 창조하여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 시적 광채를 불어넣었다. 혹자는 그들이 보편적인 감각, 즉 가장 유익하면서도 보편성에 가장 근접한 감각이 인류의 이성적인 자극과 냉정한 제련을 거친 후의 미감 그 자체라는 것을 증명하였다고 한다.

 

(柳無忌 著 <<中國文學新論>>, 김덕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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