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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국 고 대 문 학

고 대 시 가

오언시의 발생

 

한대(漢代)의 시가는 체재면에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서한(西漢) 초의 잡언시(雜言詩)와 양한(兩漢)의 악부시(樂府詩), 동한(東漢) 말에 흥성한 5언시가 그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의 형태는 완전히 분리시켜 논할 수 없으니, 그 이유는 잡언시와 악부시 속에는 이미 5언구의 형식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한(東漢) 반고(班固)의 영사시(詠史詩) 이후로 문인에 의해 본격적인 창작이 이루어진 5언시는 고시19수의 출현으로 중국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고 할 수 있다.

 

1. 5언시의 발생

  양한(兩漢) 이전의 ≪시경≫과 ≪초사≫에서부터 5언구의 형식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역시 전편이 모두 5언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5언시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며, 다만 이들은 4언과 6언의 리듬 속에 5언구의 존재를 미미하게 보존하고 있을 따름이다. 한대에 이르러 초기에는 여전히 5언시는 보이지 않고 4언이 주를 이루고 있다.  즉 ≪시경≫이 하나의 경전으로서 문인들에게 읽혀짐으로써 문인들은 민간에 유행하던 5언체를 천대시하여 짓지 아니하고 단지 ≪시경≫의 형식만 애써 모방하였다. 따라서 문인들의 5언체 시가 한대 초기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1) 5언시의 기원

일반적으로 5언시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릉(李陵)의 <여소무시(與蘇武詩)>, 반첩여(班첩여)의 <원가행(怨歌行)>, 매승(枚乘)의 <잡언9수(雜詩九首)>, 탁문군(卓文君)의 <백두음(白頭吟)> 등의 설이 있으나, 이러한 것들은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의심을 받아 부정되어 왔다. 특히 이들의 작품이 후인의 위작(僞作)이라는 것이 거의 밝혀졌다. 한대 이전의 시들 중에는 완전한 형식을 갖춘 5언시는 한 수도 없다. 그러나 동한 시기에는 고시19수 등 뛰어난 5언시가 존재하였으므로 문학의 흐름이라는 문학사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의 기원을 서한 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헌상으로 볼 수 있는 최초의 5언시는 ≪한서(漢書)≫ <오행지(五行志)>에 실려 있는 서한 성제(成帝) 때의 <사경(邪徑)> 동요이다. 그러나 동요나 민요는 민간에 유전된 구송(口誦) 문학이니 그것이 사서(史書)에 기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것이므로 <사경(邪徑)>이 단지 문헌상에 기재된 최초의 5언시일 뿐이지 이 이전에도 이미 이와 유사한 5언의 민요들이 존재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동한 반고(班固)의 <영사(詠史)>는 5언체 시가 정식으로 성립한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史料)이다. 따라서 반고의 <영사> 시는 유명 문인의 작품으로 존재하는 최초의 5언시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5언시는 어떤 특정인, 특정 작품으로써 그 기원을 삼을 수 없고, <사경>과 <영사>를 중심으로 서한 초에서 동한 초에 이르는 시기를 5언시의 발생기로 보고, 반고 이후의 시기를 그것의 성립기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2) 악부와 고시

악부는 약 100여년 동안 존속해 오면서 이후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뒤이어 일어난 고시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시"라는 명칭은 한대에 유행한 5언의 정제한 시들을 말하는 것으로 "고시19수"가 그것을 대표한다. 고시의 명칭은 고대로부터 사용되었는데, ≪시품(詩品)≫과 ≪문심조룡(文心雕龍)≫·≪세설(世說)≫ 등에 고시의 명칭이 있는 것을 보면 위진(魏晋) 시대에 이미 그것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말임을 알 수 있다.

고시와 악부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 결과 많은 부분에서 고시와 악부고사(樂府古辭)를 혼동하게 되었다. 김학주 교수는 "소명태자의 ≪문선≫이나 서릉(徐陵)의 ≪옥대신영(玉臺新詠)≫의 경우처럼 한대의 노래의 가사였다고 생각되는 것을 악부고사, 이미 노래와는 관계없게 된 시들을 고시라 한다고 볼 수 있다. 고사와 고시의 혼동례는 이밖에도 일일이 매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하면서 "이것은 자유로웠던 형식의 악부시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5언으로 정형화하여 마침내는 한대의 악부시는 고시와 구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관점은 주이준(朱이尊)의 ≪폭서정집서(曝書亭集書)·옥대신영후(玉臺新詠後)≫에도 보인다. 그는 <구거상동문(驅車上東門)>은 곧 잡곡가사(雜曲歌辭) 중 <구거상동문> 고사(古辭)를, <생년불만백(生年不滿百)> 곧 <서문행(西門行)> 고사(古辭)를 나타낸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예는 이외에도 많은데 왕성전(王成전)은 여기에 덧붙여 <영염고생죽(염염 孤生竹)>은 잡곡가사 속의 <염염고생죽> 고사(古辭)이며, <서북유고루(西北有高樓)>와 고악부 <명월조고루(明月照高樓)> 편은 내용이 매우 유사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들 악부는 3·4·5·6·7언의 다양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악부시집(樂府詩集)≫과 ≪고시기(古詩紀)≫에 실려 있는 악부고사 중 대부분은 5언시이거나 5언의 구절을 이루고 있으니, 고시는 악부를 떠나서는 완성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민가가 채입(採入)된 악부는 민가 속의 언어 요소가 부단히 5언으로 향하여 발전하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새로운 형식에 대한 적응은 바로 고시19수의 작자 및 상류사회의 문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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