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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서양에서 논의되는 소설의 기원을 살펴보면, 고대 서사문학, 중세 로망스, 근대사회의 발달에서 출발했다는 세 가지 설로 요약할수 있지만, 중국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논의되고 있다. 중국소설의 기원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패관설(稗官說) : 고대에 통치자가 민정(民情)을 알기 위해 "길거리와 골목의 이야기나 길에서 듣고 말한 것(街談巷語, 道聽塗說者之所造)"을 패관(稗官)이라는 관리로 하여금 수집하도록 한 것에서 소설(小說)이 나왔다는 것. - 창작의 주체를 기준으로 삼은 것.
② 방사설(方士說) : 한대(漢代)의 방사(方士)들이 집권자에게 들려주었던 여러가지 방술(方術)들에 대한 기록이 최초의 소설 작품이라는 것. - 창작의 대상을 기준으로 삼은 것.
③ 신화설(神話說) : 중국에서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와 전설을 중국 고대소설의 맹아로 보는 것. - 장르를 기준으로 삼은 것.
④ 사전설(史傳說) : 소설을 사전(史傳: 역사 전기)문학으로부터 발전해 온 것으로 파악하는 것. - 여타의 장르와의 연관관계를 중시한 것.
⑤ 기타 : 장자설(莊子說), 제자 우언설(諸子寓言說) - 그 텍스트를 기준으로 삼은 것. 노동할 때 휴식설 - 발생론적인 관점에서 파악한 것.
☞ 중국소설의 역사적 이해 중국소설이란 선진(先秦)시대의 신화(神話)·전설(傳說)·우언(寓言)으로부터 한(漢)·위(魏)·육조(六朝)의 신선(神仙)·지괴(志怪)·지인(志人), 당대의 전기(傳奇)·변문(變文), 송대의 화본(話本), 명청의 장회소설(章回小說)을 거쳐 현대소설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이나 형식에 대한 인식은 같지 않다. 특히 중국의 현대소설에 대한 관념이나 인식은 대체로 모두 서양으로부터 이식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이와같은 서양인의 소설관에 준거하여 중국의 고대소설을 연구하거나 정리하고자 했기 때문에 때로는 중국소설 자체에 대한 존재의 가치를 부정하기에 이른 것이라 여겨진다.(호회침(胡懷琛)은 ≪중국소설개론(中國小說槪論)≫에서 5·4이전에는 중국에 소설이 없다고 하였음) 중국의 현대소설을 논함에 있어 이같은 평가의 척도를 적용할 수도 있겠으나 이로써 모든 중국소설을 거론할 수는 없다. 비록 중국의 고대소설과 현대소설이 그 내용과 형식이 크게 다르다고 해서 결국 과거의 중국소설이 없다는 근본적인 부정은 할 수도 없으려니와 그같은 주장은 이미 그 타당성을 잃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소설이라는 용어의 현대적 개념은 서구의 근대사회 형성 이후에 나온 "노벨(novel)"의 개념이며, 이렇게 본다면 현재 소설이라 불리어지는 것은 중국의 고대소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대소설과도 그 기원이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1) 선진시대 "소설"이란 명칭이 동양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BC4세기경 선진시대 전국 말기이다. 그러나 당시의 소설과 요즘에 통용되고 있는 소설과는 그 뜻이 서로 다르다. 선진시대에 "소설"을 거론한 것으로 장자(莊子)를 효시로 하여 순자(荀子)로 대표된다.
≪장자(莊子)≫ 「외물편(外物篇)」 : "작은 이야기를 꾸며서 높은 칭찬이나 구하는 사람들은 큰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飾小說以干縣令, 其於大達亦遠矣.)"
후대의 주석가들은 여기에서 말한 소설을 "대달(大達)", 즉 "대도(大道)"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풀이하고 있다. 즉 자질구레한 행위에 부수된 이야기를 꾸미거나 덧붙여낸 것이 소설이고 이같은 소행은 "소도(小道)"로 간주되었고 소도(小道)로써 자기과시 내지는 출세의 방편으로 삼는 자는 큰 도리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과는 거리가 매우 멀어질 뿐이라고 본 것이 장자(莊子)가 생각했던 소설에 대한 최초의 인식인 셈이다. 소설을 대도(大道)와의 대칭적인 의미로만 해석한다면 현대적 의미의 중국소설과는 관념상의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소설의 본질적 속성을 허구(Fiction)라고 할 때, 가탁으로 수식되거나 덧붙여 꾸며진 자질구레한 이야기로서의 소설은 곧 가공적인 허구의 세계일 수 있기에 현대적 의미로서의 소설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순자(荀子)≫ 「정명편(正明篇)」 :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도리를 말할 뿐이니, 어설픈 학자들이 기괴한 이야기로 바라는 것들은 모두 그 앞에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故智者論道而已矣, 小家珍說之所願皆衰矣.)"
여기에서 "어설픈 학자들의 기괴한 이야기(小家珍說)"는 소설의 또다른 호칭으로 기문(奇聞)·기담(奇談)·진문(珍聞)·진설(珍說)과 대체로 같은 뜻이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소가진설(小家珍說)"의 약어로 대가(大家)가 아닌 소가(小家)들에 의해 주로 지어지는 진기한 이야기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순자(荀子)≫에서도 "지자(智者)"와 "소가(小家)"는 서로 대칭적인 관념으로 파악하고 있어서 소설에 대한 관념의 차이나 인식의 진보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같은 진기한 이야기는 "새롭다(Novel)"거나 "신기한 것"으로 서양소설의 어원인 "Novella"와도 상통한다. 그것은 소설이 추구했던 세계가 동서고금이 서로 같아서 그 본질이나 속성이 같을 수 밖에 없었던 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2) 한대(漢代) 환담(桓譚: 字 君山, BC23~AD50년경)의 ≪신론(新論)≫ : "소설가와 같은 무리는 자잘한 이야깃거리를 모으고, 가까운 곳에서 비유적인 이야기들을 취하여 짧은 책을 지었는데, 그 가운데는 몸가짐을 바로 하고 가정을 다스리는 데에 볼 만한 말이 있다.(小說家合殘叢小語, 近取譬喩, 以作短書, 治身理家, 有可觀之辭.)"
여기에서 소설가란 "잔총소어(殘叢小語)", 즉 "흩어져 있는 자질구레한 말들"을 모으고, 이것을 다시 책에 기록하여 보관하면서, 때로는 그것들을 취해 생활의 거울로 삼고 가치가 있는 글이라고 여겼다. 이는 수신제가에 도움이 되는 것이 유가경전 뿐이라고 생각했던 당시에 소설 그 자체에도 교화의 실용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대 중국소설은 이야기 수집가들이 소설가였고 그들에 의해 모아진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제자략(諸子略)≫ : "소설가의 부류는 대개가 패관으로부터 나왔다. 거리의 이야기와 골목에 떠도는 이야기들은 길거리에서 듣고 꾸며낸 자들이 지어낸 것들이다.(小說家者流, 蓋出于稗官, 街談巷語, 道聽塗說者之所造也.)"
여기에서는 패관에 의해 모아진 "가담항어(街談巷語)"가 다시 도식(塗飾)되어진 것이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소설의 창작이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패관의 손에서 기록되기까지 여러과정을 거쳐 덧붙여 지어지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이외에도 반고는 ≪한서·예문지·제자략≫에서 유가(儒家)·도가(道家)·음가(陰家)·양가(陽家)·법가(法家)·명가(名家)·묵가(墨家)·종횡가(縱橫家)·잡가(雜家)·농가(農家)·소설가(小說家) 등 10가를 열거하고, 마지막에 "제자 10가 중에서 볼만간 것은 9가 뿐이다.(諸子凡十家, 可觀者九家而已.)"라고 하여 소설가를 제외한 나머지 9가만 인정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일단 소설이란 양식을 거론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당시에 소설은 비록 학자들의 중시를 받지는 못했지만, 쉽게 지나쳐 버릴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후로 한(漢)·위(魏)·육조(六朝)에서 수(隋)·당(唐)에 이르기까지 문학가와 비평가들이 주장한 소설의 개념과 범주에 대한 견해는 기본적으로 반고(班固)의 논술을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상에서 언급한 소설에 관한 인식과 서술은 간단하고 애매하며, 소설 범주에 대해서는 명확한 구분이 없었다. 소설의 범주에 대해서 구분하고 소설의 특성에 대하여 해석을 시도한 것은 주로 당대(唐代) 및 그 이후의 소설 비평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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