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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00_next.gif 태호 복희씨

red00_next.gif 염제 신농씨

red00_next.gif 황 제  /  소 호

red00_next.gif 전 욱  /  제 곡

red00_next.gif 당 요(요임금)

red00_next.gif 우 순(순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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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시대의 삼황오제

삼황 -- 황    제

 

황제(黃帝)는 성이 희(姬, 일설에는 공손<公孫>이라고도 함)이고, 호는 헌원씨(軒轅氏) 또는 유웅씨(有熊氏), 진운씨(縉雲氏)이다. 약 4000여년 전 황하유역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부락연맹의 장으로, 중화민족의 시조로 추존되어 오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100여세까지 살다가 용을 타고 승천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100년간 재위해 있었고 111세까지 살다가 형산(荊山: 지금의 하남성 영보현<靈寶縣> 문향진 남쪽, 복부산<覆釜山>이라고도 함)의 남쪽에서 죽었으며, 상군(上郡) 교산(橋山: 지금의 섬서성 황릉현<黃陵縣> 서북의 교산<橋山>)에 묻혔다고 한다.

황제는 헌원(軒轅)의 언덕(지금의 하남성 신정현<新鄭縣> 서북)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유웅(有熊: 지금의 하남성 신정현 서북)에 살면서 관명을 운(雲)이라 하였다. 황제는 염제 신농씨와 이복형제로 서북고원에서 활동하던 소전씨(少典氏) 족장의 아들이라 한다. 황제의 어머니는 유교씨(有교氏, 교=+喬)로 이름은 부보(附寶)인데, 큰 번개가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樞星)을 에워싸는 것을 보고 감응을 받아 임신을 한 후에 황제를 낳았다고 한다. 어떤 문헌에서는 그가 본래 천둥과 번개를 관장하는 신이었다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수레를 발명하였기 때문에 '헌원씨'(軒轅氏: 헌원은 수레와 수레끌채라는 뜻)라 칭하였다고도 하고, 그가 구름을 사용하여 자신의 신하와 가족의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진운씨'(縉雲氏: 진운은 구름으로 장식하다는 뜻)라 칭하였다고도 한다. 황제는 또 유웅씨라고도 하는데, 그는 일찍이 곰(熊), 말곰(), 비(貔: 고대의 맹수 일종, 범과 비슷한 수컷), 휴(: 고대의 맹수 일종, 범과 비슷한 암컷), 추(고대의 맹수 일종, 범과 비슷한데 크기는 개만함), 범(虎) 등 6종의 야수를 훈련시켜 전쟁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黃帝(황제)'라는 존칭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원래 '皇帝(황제)'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고 한다. 신화 속의 '皇帝(황제)는 후세에 의미하는 봉건국가의 정치적 우두머리가 아니라 지극히 높은 신 '황천상제(皇天上帝: 하느님)'의 줄임말이다. 후에 '제(帝)'가 오제(五帝: 동방청제<東方靑帝>, 서방백제<白帝>, 남방적제<南方赤帝>, 북방흑제<北方黑帝>, 중앙황제<中央黃帝>)로 분화되자, '皇帝(황제)'도 '黃帝(황제)'로 변화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황제는 동쪽으로 진출하여 염제를 물리치고 염제의 부락과 합병하여 부락연맹을 결성하였다. 당시에 구려족(九黎族: 고대 남방의 부락명)의 우두머리 치우(蚩尤)는 성미가 사납고 흉폭하여 항상 다른 부락을 침략하곤 하였다. 마침 치우가 염제를 공격하자 염제는 그에게 패하여 황제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염제가 탁록에서 치우와 결전을 벌였을 때, 황제는 6개의 부락을 거느리고 달려가서 치우에게 맹공을 펼쳤다. 치우에게는 81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용맹하면서도 흉폭하였으며, 부하들도 칼, 창, 활 등의 무기를 사용하여 전투가 대단히 격렬하였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치우가 요술을 부려 콧구멍에서 짙은 안개를 뿜어냈다. 그 순간 천지가 어두컴컴해지고 광풍이 세차게 일어나 번개가 치기를 3일간, 치우의 부하들은 여세를 몰아 사납게 돌진하였다. 이에 황제의 부하들은 짙은 안개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아 방향을 잃고 크게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황제는 즉시 풍후(風后)에게 지남차(指南車)를 만들게 하여 그 위에 작은 철인을 세워두고 팔을 뻗어 남쪽을 가리키게 했다. 이에 방향을 식별할 수 있게 된 황제의 병사들은 안개를 뚫고 돌진하여 구려족을 격퇴하고 치우를 죽였다. 이 일이 있은 후 황제는 염황(炎黃) 부락연맹의 장으로 추대되었다.

황제시기에는 매우 많은 물건들을 발명하였으니, 방직, 배, 수레, 집, 문자, 음율, 산수, 역법, 관, 그릇 등이 그것이다. 춘추 후기부터 그는 중국민족의 시조로 추존되었다.

≪포박자(抱朴子)≫「극언편(極言篇)」에서는 ≪열선전(列仙傳)≫의 전설을 인용하여, 황제가 만년에 이르러 자기가 직접 죽을 날을 택했다고 하였다. 이 날에 이르러 그는 신하들과 사별한 후 교산(橋山)에 묻혔다. 얼마 후 무덤이 갑자기 무너져내렸는데 무덤속에 시신은 없고 그의 검과 신만 있었다고 한다.

≪사기(史記)≫「봉선서(封禪書)」에도 전설이 전해오는데, 황제가 100세 되었을 때 수양산(首陽山)으로 가서 구리를 캐어 보정(寶鼎)을 주조하였다. 보정이 완성된 후에 하늘에서 한 마리 용이 내려와 그를 맞이하자 그는 바로 그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많은 신하들은 그와 함께 승천하려고 필사적으로 용의 수염을 잡았다고 한다.

≪사기≫「오제본기(五帝本紀)」에서는 황제가 100년간 재위한 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다.

황제의 무덤은 섬서, 감숙, 하남, 하북에 각각 하나씩 있는데, 그 중에서 섬서 황릉현(黃陵縣) 북쪽 교산(橋山) 정상에 있는 황릉(黃陵)이 가장 유명하다.

 

 

 

황제는 염제와 더불어 중화민족의 시조로 그 후손이 매우 번창하였으니, 특히 요(堯)임금순(舜)임금을 비롯하여 하(夏), 상(商), 주(周) 3대의 제왕이 모두 그의 후손이다. ≪국어(國語)≫「진어(晋語)」에 의하면, 황제의 자손 25명 중에서 14명이 성씨를 얻고 12개의 성씨로 나누어졌는데, 희(姬), 유(酉), 기(祁), 기(己), 등(), 잠(箴), 임(任), 순(荀), 희(僖), 길(女+吉), 현(), 의(依)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희, 기(祁), 임, 길 4성이 비교적 유명하다. 기(祁)씨 중에 유명한 사람은 요(堯)임금이고, 희씨 중에 유명한 사람은 서주의 왕족 모두이다. 서주 초기에 왕족 자제들과 동성의 귀족들을 각지의 제후로 책봉했는데 그 수가 70여개국에 이르렀다. 각종 문헌에 의하면 이들 중에 임씨와 길씨의 제후국이 많이 보인다. 이 외에 당시의 융적(戎狄) 부족 속에도 희(姬)씨와 유(酉)씨 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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