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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淸) 성조(聖祖) 강희황제(康熙皇帝)

 

【강희황제(康熙皇帝)의 황후들】                                     [강희황제]

 

효성인황후(孝誠仁皇后)

효성인황후 허서리씨(赫舍里氏)는 강희황제의 첫째 황후이다. 강희 초기에 황제의 조모인 효장문황후(孝庄文皇后)는 강희황제를 위해 황후를 선정할 때 많은 고심을 하였다. 황후 후보자 중에는 오배(鰲拜)의 딸도 있었고 알필륭(必隆)의 딸도 있었는데, 누가 황후로 선정되든 황후의 친정세력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당시 오배는 나날이 오만방자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효장문황후는 당연히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오배의 딸은 제일 먼저 황후 후보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알필륭은 이중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느 한쪽의 세력이 강대해지면 그는 언제든지 그쪽으로 기울어지는 인물이었던지라 그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완전히 팽개치고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알필륭의 딸을 비(妃)로 삼고 황후로 삼지는 않았다.

다른 후보자 중에 고명대신(顧命大臣)의 한 명인 색니(索尼)의 손녀도 있었다. 색니는 고명대신으로 한족 관리들을 배척하면서 청나라 조정에는 절대적인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오배의 전횡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손녀를 황후로 책봉함에 있어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이러한 효장문황후의 판단은 정확하였다. 실제로 오배와의 권력쟁탈에서 색씨 집안은 절대적인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색니는 비록 중도에 사망하였지만 그의 둘째 아들이자 효성인황후의 삼촌인 색액도(索額圖)는 오배와의 권력쟁탈에서 강희황제를 도와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로써 효성인황후는 강희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강희 13년 효성인황후는 둘째 아들 윤잉(胤礽)을 출산하고 그날에 세상을 떠났다. 강희황제는 매우 비통해 하며 윤잉을 태자로 삼을 결심을 하고, 황실을 위해 많은 공을 세운 색씨집안에 보답하려 하였다. 윤잉이 몇 번이나 잘못을 저질러도 그때마다 강희황제가 그를 용서해주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희 말기에 둘째 아들 윤잉은 갈수록 그 인물됨이 형편없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강희황제는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효성인황후에 대한 사랑과 색씨집안의 충성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잠시 접어둔 채 단호하게 윤잉을 폐위시키고 넷째 아들 윤정(胤禎)을 황태자에 책봉하였다. 애석하게도 온화하고 현숙한 효성인황후는 강희황제를 위해 유능한 천자를 한 명도 출산하지 못했던 것이다. 

 

효소인황후(孝昭仁皇后)

효소인황후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알필륭의 딸이다. 효성인황후가 세상을 떠나고 오배를 체포한 결정적인 순간에 고명대신 알필륭은 다시 황제의 편에 서 있었다. 이로써 강희 16년에 그의 딸은 황후로 책봉되는 영예를 안았으니 그녀가 바로 효소인황후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이듬해인 강희 17년에 세상을 떠났다.

 

효의인황후(孝懿仁皇后)

효의인황후 통쟈씨(佳氏)는 강희황제 생모의 질녀이다. 즉 강희황제의 외사촌 동생이며, 강희시대의 유명한 대학자 동국유(國維)의 딸이다.

 

효공인황후(孝恭仁皇后)

효공인황후 우야씨(烏雅氏)는 강희황제의 뒤를 이은 세종(世宗) 옹정황제(雍正皇帝)의 생모이다. 강희시기에는 덕비(德妃)로 있었으나 옹정황제가 즉위한 후에 황태후로 추존하였다.

 

경민황귀비(敬敏皇貴妃)

경민황귀비 장쟈씨(章佳氏)는 강희황제의 정비(靜妃)이자 13번째 아들 윤상(胤祥)의 생모이다. 옹정시기에 윤상의 조정에 대한 충성심을 표창하면서 장쟈씨를 황후 다음가는 위치인 황귀비로 추존하고 경릉(景陵)에 합장하였다. 이로써 청대 황제의 능묘에 황귀비를 합장하는 최초의 선례를 남겼다.

        

 [강희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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