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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 때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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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 선통황제(宣統皇帝) 부의(溥儀)

 

청나라 마지막황제 선통황제(宣統皇帝)는 이름이 부의(溥儀: 1906~1967)이다. 도광황제(道光皇帝)의 증손자이자, 순친왕(醇親王) 재풍(載)의 아들인 부의는 광서황제(光緖皇帝)가 죽은 뒤에 황위를 계승하였다. 3년간 재위하였으며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황위를 내어주면서 중국 역사상 마지막황제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공산당 정부에서는 그의 사상을 개조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만년에 이르러 그는 신장암에 걸려 고생하다가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후 시신은 화장을 하였으며 유해는 북경시 팔보산(八寶山) 혁명공묘(革命公墓)에 안치되어 있다.

 

1908년 10월 자희태후(慈禧太后: 즉 서태후)는 병석에 드러누운지 10일째 되던 날 돌연히 부의를 황제에 앉혀 동치황제(同治皇帝)를 계승하면서 광서황제의 뒤를 잇도록 히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다음 광서황제와 자희태후는 이틀 사이에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후에 세 살밖에 안되는 어린 부의가 태화전(太和殿)에서 황제에 즉위하였으며, 융유태후(隆裕太后)와 부의의 아버지 순친왕 재풍이 섭정을 하였다. 그 이듬해에 연호를 '선통(宣統)'으로 고쳤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났다. 1912년 2월 12일 강압에 못이긴 융유태후가 부의를 대신하여 <퇴위조서>를 반포하고, 부의가 자금성(紫禁城)의 양심전(養心殿)에서 물러남으로써, 청왕조의 멸망과 2000여년간 지속된 봉건왕조의 종말을 고하였다.

1917년 6월 장훈(張勛)은 군대를 거느리고 북경으로 진입하여, 7월 1일 강유위(康有爲) 등의 보황당(保皇黨) 일파와 함께 부의의 황제 복위를 선포하였다. 12월 부의는 성토 속에 다시 퇴위를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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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 때의 모습>

1924년 11월 5일 풍옥상(馮玉祥)은 녹종린(鹿鍾麟)에게 군대를 이끌고 자금성으로 진입하여 부의를 궁궐에서 쫓아내게 했다.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핍궁사건(逼宮事件)'이라 일컫는다. 이에 부의는 재풍의 거처로 옮겼다가 다시 일본 공사관으로 도피하였다. 얼마 후 일본인에 의해 천진(天津)으로 호송되었다.

1934년 3월 1일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부의를 부추켜 만주국의 통치자로 내세우고 연호를 '대동(大同)'이라 하였다. 1934년 국호를 '만주제국(滿洲帝國)'이라 고치고 '황제'라 칭한 후 연호를 '강덕(康德)'이라 하였다.

1945년 8월 연합군에게 패한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8월 17일 부의는 심양(沈陽)에서 소련 홍군에 의해 포로로 붙잡혀 소련으로 잡혀갔다. 1950년 8월 초 중국으로 압송되어 무순(撫順) 전범관리소에서 상상 개조 교육을 받았다. 1959년 12월 4일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모택동(毛澤東)은 특별 사면령을 내렸다.

"이 전범들은 이미 10년간 수감되어 있었다.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이들은 노동 개조와 사상 교육을 받아 이미 개과천선의 의사를 확실히 표명하였기에 특별 사면령 제1조의 규정에 의거하여 석방한다."

 

이로부터 봉건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부의는 마침내 자기 힘으로 생활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1960년 3월 부의는 북경식물원으로 배정 받아 일하였다. 1964년 전국정치협상회의 문사자료연구위원회(文史資料硏究委員會)로 전출되어 자료 전문위원을 역임하면서, 인민정치협상회의 제4기 전국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67년 부의는 신장암으로 시달리다 쓰러졌다. 당시 주은래(周恩來) 총리는 직접 문병을 갔으며, 정협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부의의 병을 반드시 완치시키라!"고 지시했다. 그후 그를 수도병원(首都醫院)으로 보내어 중국과 서양 의학으로 함께 치료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병세가 가장 위중해졌을 때 주은래 총리는 다시 유명한 한의사 포보주(蒲輔周)를 보내어 그의 병세를 살펴보도록 하면서 안부를 전하기도 하였다.

그후에도 병세는 호전되지 않다가 1967년 10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팔보산(八寶山) 혁명공원묘지에 안장하였다.

역사에서는 부의를 손제(遜帝) 또는 선통황제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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