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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1월 5일 풍옥상(馮玉祥)은 녹종린(鹿鍾麟)에게 군대를
이끌고 자금성으로 진입하여 부의를 궁궐에서 쫓아내게
했다.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핍궁사건(逼宮事件)'이라
일컫는다. 이에 부의는 재풍의 거처로 옮겼다가 다시 일본
공사관으로 도피하였다. 얼마 후 일본인에 의해 천진(天津)으로
호송되었다.
1934년
3월 1일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부의를 부추켜 만주국의 통치자로
내세우고 연호를 '대동(大同)'이라 하였다. 1934년 국호를
'만주제국(滿洲帝國)'이라 고치고 '황제'라 칭한 후 연호를
'강덕(康德)'이라 하였다.
1945년
8월 연합군에게 패한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8월 17일 부의는 심양(沈陽)에서 소련 홍군에 의해 포로로
붙잡혀 소련으로 잡혀갔다. 1950년 8월 초 중국으로 압송되어
무순(撫順) 전범관리소에서 상상 개조 교육을 받았다. 1959년
12월 4일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모택동(毛澤東)은
특별 사면령을 내렸다.
"이
전범들은 이미 10년간 수감되어 있었다.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이들은 노동 개조와 사상 교육을 받아 이미 개과천선의
의사를 확실히 표명하였기에 특별 사면령 제1조의 규정에
의거하여 석방한다."
이로부터
봉건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부의는 마침내 자기 힘으로 생활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1960년
3월 부의는 북경식물원으로 배정 받아 일하였다. 1964년
전국정치협상회의 문사자료연구위원회(文史資料硏究委員會)로
전출되어 자료 전문위원을 역임하면서, 인민정치협상회의
제4기 전국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67년
부의는 신장암으로 시달리다 쓰러졌다. 당시 주은래(周恩來)
총리는 직접 문병을 갔으며, 정협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부의의 병을
반드시 완치시키라!"고 지시했다.
그후 그를 수도병원(首都醫院)으로 보내어 중국과 서양
의학으로 함께 치료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병세가
가장 위중해졌을 때 주은래 총리는 다시 유명한 한의사
포보주(蒲輔周)를 보내어 그의 병세를 살펴보도록 하면서
안부를 전하기도 하였다.
그후에도
병세는 호전되지 않다가 1967년 10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팔보산(八寶山) 혁명공원묘지에 안장하였다.
역사에서는
부의를 손제(遜帝) 또는 선통황제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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