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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의 기틀을 다진 세조 쿠빌라이(忽必烈)

 

원(元) 세조(世祖)는 이름이 쿠빌라이(忽必烈: 1215 ~ 1294)이고, 예종(睿宗) 투루이(拖雷)의 넷째 아들이며, 헌종(憲宗) 몽케(蒙哥)의 동생이다. 몽케가 죽은 후 제위를 계승하였다. 35년간 재위하였으며, 80세를 일기로 병사하여, 기련곡(起輦谷)에 안장되었다.

 

쿠빌라이는 몽케가 즉위한 후에 고비사막 이남의 중국 영토를 다스리라는 명을 받았다. 그는 각 민족의 지식계층과 군벌들을 모집하였으며, 유병충(劉秉忠), 양유중(楊惟中), 요추(姚樞), 학경(經) 등의 영향을 받아 '한법(漢法)'을 채용하여 둔전(屯田)을 일으키는 등 생산력 증대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일찍이 남방으로 진격하여 대리(大理)를 멸망시키고 토번(吐蕃: 지금의 티벳)을 굴복시켰다. 1256년에 개평(開平: 지금의 내몽고 정란기<正藍旗> 서볘수무<石別蘇木>)을 건설하였다.

몽케(蒙哥)가 합주(合州)에서 죽었을 때 그는 마침 남송의 악주(鄂州: 지금의 호북성 무한시<武漢市>)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몽케의 사망 소식을 접한 그는 책사 학경의 계책을 받아들여 한편으로는 몽케의 영구를 맏이하면서 대칸(大汗)의 옥쇄를 차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송의 권신 가사도(賈似道)와 비밀리에 협약하여 군대를 철수하였다. 1260년 3월 그는 대칸을 선출하는 후리러타이(忽里勒台) 제도를 폐지하고 개평(開平)에서 스스로 황위를 계승, 설선칸(薛禪汗)이라 칭한 후 연호를 '중통(中統)'이라 하였다.

쿠빌라이가 즉위한지 한 달도 안되서 몽케의 명을 받들어 화림(和林)에 주둔하고 있던 동생 아리크부카(阿里不哥)도 자기를 대칸이라 선포하였다. 이에 직접 대군을 거느리고 출병한 쿠빌라이는 그 이듬해 고비사막 북쪽에서 아리크부크를 물리치고 1264년에 항복을 받아내었다.

1267년 쿠빌라이는 대도성(大都城: 지금의 북경시)을 건설한 후 대도로 천도하였다. 1271년 국호를 원(元)으로 고쳤으며, 1279년 남송을 멸망시키고 전중국을 통일하였다.

쿠빌라이는 재위 기간에 행성(行省) 제도 등 행정, 군사, 조세제도를 수립하였으며, 농업을 중시하여 수리사업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탄(李) 및 해도(海都), 내안(乃顔)의 반란을 진압하여 변경지역의 관리를 강화하고, 다민족 통일 중국의 기틀을 다지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무력 진압과 사상 통제로 인하여 내부적으로 계층간 민족간 갈등이 첨예해져 민중봉기가 끊이지 않았다.

쿠빌라이는 원래 상케(桑哥)를 중용하였다. 그러나 상케는 권세를 믿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매관매직을 일삼는 등 조정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어느날 쿠빌라이가 사냥을 나갔을 때 신하 철리(徹里)는 상케가 없는 틈을 타서 쿠빌라이에게 상케의 악행을 밀고하였다. 쿠빌라이는 그의 말을 믿지 않고 그가 고의로 대신을 모함하는 것으로 판단, 호위병에게 그의 뺨을 몽둥이로 후려치게 했다. 철리는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땅에 쓰러지면서도 큰소리로 외쳤다.

"신은 상케에게 어떤 개인적인 원한도 없습니다. 오직 나라를 위해서 대담하게 말씀드리는 것 뿐이니 부디 간신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지금 폐하께서 신의 말씀을 듣고 상케를 사형에 처하신다면, 신은 내일 죽어도 원한이 없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한 쿠빌라이는 직접 비밀리에 조사해를 보니 과연 상케의 죄상이 낱낱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쿠빌라이는 즉시 상케를 파면하고 가산을 몰수한 다음 사형에 처했다. 그리고는 "상케는 나를 속이고 4년 동안이나 악행을 저질러왔는데, 대신들은 어찌하여 그러한 사실을 아무도 몰랐더란 말이냐!"라고 하면서, 대부분의 대신들을 파면하고 완택(完澤), 불홀술(不忽術) 등을 중신으로 기용하여 조정은 평화를 되찾았다.

1285년 한 어사(御史)가 쿠빌라이에게 제위를 태자 진금(眞金)에게 선위할 것을 주청했다. 또 어떤 사람이 이 틈에 태자가 제위를 찬탈하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밀고하여 쿠빌라이는 크게 진노하였다. 평소에 매우 효성스럽고 온순하였던 진금 태자는 이러한 비방을 듣고 공포증에 시달리다 죽었다. 아들의 죽음에 쿠빌라이는 매우 비통해하였다.

1294년 정월 초하루 쿠빌라이는 병으로 쓰러졌다. 그로부터 십 며칠이 지난 후 병세가 더욱 위독해지자 승상 백안(伯顔)과 불홀술을 불러 황태손 테무르(鐵穆耳)에게 제위를 계승한다는 고명을 전하고, 21일에 병사했다.

쿠빌라이가 죽은 후에 그의 묘호를 세조(世祖)라 하고, 시호를 성덕신공문무황제(聖德神功文武皇帝)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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