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릴
때 일찍이 숙부의 "소호지국(少昊之國)"을 유람하고 10세 때부터 국정을
보좌하였으며, 20세 때 우두머리가 되었다. 당시에 황제에게 정복된 구려족은 여전히
그들의 무속신앙을 신봉하면서 잡신을 섬기고 있었다. 전욱은 왕위를 물려받은 후에
명령을 내려 무속신앙을 금지시키고, 구려족을 황제족의 교화에 따르도록 하였다.
그는 또 인사를 중시하고 농업을 발전시켰다.
당시
염제(신농씨)의 후손 공공(共工)과 전욱이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격전을 벌였다.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하늘에서 인간세상으로, 동방에서 서방으로 오가며 싸우다가 서북쪽의 부주산(不周山)에까지
가서 싸웠다. 부주산은 적황갈색 암석층의 험준하고 높은 산으로 당시에 하늘을 받치고 있던 거대한 기둥이었다.
공공은 결국 패색이 짙어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거세게 부주산을
들이받아 이 거대한 기둥은 두동강이 나고 말았다. 이에 하늘은 버팀목이 없어져
서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해와 달과 별들이 모두 서쪽으로 운행하게 되었다. 동남쪽의
대지는 부딪힐 때의 충격으로 깊은 구덩이가 생겼는데, 이로부터 크고 작은 강물들의
흐름도 모두 동남쪽으로 기울어진 채 바다로 흘러갔다.
≪상서(尙書)≫「여형(呂刑)」에
의하면, 전욱은 치우 같은 자가 다시 나타나 자기에게 대항할 것을 염려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신과
인간이 합심하여 위 아래에서 협공한다면 그의 통치지역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
뻔하였다.
그는 손자 대신중(大神重)과 여용력(黎用力)에 명하여 신과 인간이 상하를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붙어있는 하늘과 땅을 벌어뜨려 멀리 떼어내도록
했다. 이때부터 하늘과 땅은 서로 통할 수 있는 길이 단절되고 신과 사람도 분리되어,
신은 이따금 인간세상으로 내려올 수 있었으나 인간은 하늘로 오를 길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남정(南正)에게 명하여 천신에 대한 제사를 관장토록 하고, 북정(北正)에게
명하여 민정을 돌보게 했다. 이 전설은 당시에 인간과 신의 일을 분담함으로써
원시종교가 신권(神權)으로 향하는 과도기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전욱은
음악을 대단히 좋아하여, 어릴 때 숙부 소호(少昊)는 그를 위해 금슬(琴瑟)을 만들어주었다.
그는 성인이 된 후에 바람에 불리는 각종 소리를 본따서 <승운지가(承雲之歌)>를
제작하여 연주하게 했다.
전욱의
무덤은 여러 곳에 있었는데, ≪사기· 오제본기집해(五帝本紀集解)≫「황람(皇覽)」에
의하면 그것은 동군(東郡) 복양 돈구성(頓丘城) 밖 광양리(廣陽里)에 있다.
≪산해경≫「대황서경(大荒西經)」에
의하면, 전욱이 죽은 후에 북쪽에서 큰 바람이 불어와 지하의 샘을 밖으로 분출시켰는데,
이때 뱀이 물고기로 변하였다. 죽은 전욱은 뱀이 물고기로 변하는 순간에 물고기의
몸에 붙어서 다시 살아났다. 그리하여 그의 몸은 반은 사람, 반은 물고기인 '어부(魚婦)'가 되었으며,
사람 모양을 한 반쪽은 이미 쓸모없게 되었고, 물고기 모양을 한 반쪽만 제 기능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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