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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 개방정책 시행 이후, 중국은 개혁을 향한 발걸음을 크게 내딛는 동시에 단호하고도 대담한 대외개방을 추진하였다. 중국의 대외개방의 주요 내용은 국제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고, 서구의 자본과 선진기술을 대담하게 흡수하여 국내의 경제건설을 가속화하는 것이었다. 과거 오랫동안 중국은 단편적으로 '자력갱생(自力更生)'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서구의 자본을 흡수하지 못하는, 사실상 반쇄국 상태에 처해 있었고, 이는 자국 경제의 신속한 발전에 악영향을 미쳤다. 1978년 중국은 마침내 과거의 이념적 속박을 타파하고, 대문을 활짝 열어 국외의 자본과 선진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1979년부터 1990년 사이에 대외차관, 외국 기업가의 직간접투자를 포함하여 중국은 모두 29,693건에 이르는 외자이용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는데, 그 금액은 1,020.78억 달러이고 실제 이용외자는 680.75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40여년 동안의 실제 이용외자 총액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액수이다. 1992년에는 다시 48,858건의 외자이용 항목을 새로 체결하였는데 그 금액은 694.39억 달러이다. 대량으로 도입된 외국자본은 국내 건설자금의 부족을 보충하여 수출증대와 외환균형을 촉진시킨 동시에, 국외의 선진기술과 관리경험을 도입하여 경제적 발전을 촉진시켰다. 중국이 대외개방 중에 취한 중대한 조치는 바로 연해도시를 개방하여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를 설치한 것이다. 1980년부터 먼저 심천(深圳), 주해(珠海), 산두(汕頭), 하문(厦門) 등의 4개 지역에 경제특구를 설치하여 대외개방의 역사적인 첫 걸음을 내딛었다. 1984년에는 더 나아가서 상해(上海), 천진(天津), 대련(大連), 진황도(秦皇島), 연대(烟臺), 청도(靑島), 연운항(連雲港), 남통(南通), 영파(寧波), 온주(溫州), 복주(福州), 광주(廣州), 담강(湛江), 북해(北海) 등의 14개 연해도시를 개방하였으며, 1985년에는 장강삼각주, 주강삼각주와 민남 장주(閩南漳州), 천주(泉州), 하문삼각구(厦門三角區)를 개발하여 개방식 연해 경제개발구로 만들었다. 1988년에는 해남성(海南省)을 설립하여 대규모 경제특구를 설치하고, 1989년에는 다시 상해 포동(浦東) 경제구의 개발과 개방을 선포하였다. 이로써 중국에는 연해지구의 전면적인 개방이라는 국면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경제특구와 14개 연해도시 및 경제개발구는 중국 대외개방의 창구이면서 전초 기지이다. 국외의 자본과 선진기술 및 관리경험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중국 정부에서는 그곳에 특수한 관리 체제와 정책을 시행하였다. 경제특구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특구의 경제발전은 주로 외자이용에 의존하여 여러 종류의 경제가 병존하는데, 중외합자, 중외합작, 외상독자의 '삼자(三資)기업'을 위주로 하며 생산품은 주로 수출용이다. ② 특구의 경제 활동은 국가의 거시적인 통제 아래에서 시장조절을 실행한다. ③ 특구에 투자하는 국외와 홍콩, 마카오, 대만의 기업가들에게 대하여 세금, 토지사용료, 출입국관리 등에 있어서 특혜를 준다. 예를 들면, '삼자기업'에 대해서 15%의 기업소득세를 감면해 주고 상품 수출에는 관세를 면제해 주는 것 등이 있다. ④ 특구에서는 비교적 많은 경제적 자율권을 누린다. 예를 들면, 건설 부문 도입에 대한 심사 허가권은 일반적으로 성급과 비슷하지만, 어떤 방면에서는 자율권이 성급보다도 많다. 14개 연해도시 및 경제개발구에 대한 정책은 특구와 다르지만 두 가지의 기본 정책은 일치한다. 하나는 중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가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당 지역 정부의 경제활동에 대해 더욱 큰 자율권을 주는 것이다. 그 목적은 연해지구의 경제를 우선적으로 발전시킨 다음, 이로써 외자이용, 기술도입, 경제정보 전달, 국제무역 확대, 수송인재 양성 등에서 내륙지역을 지원하여 중국 전체의 경제체제 개혁과 경제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를 설치하고 연해도시를 개방하여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심천 경제특구를 예로 들면, 원래 그곳은 황량한 땅에 불과하였지만, 단 10년 사이에 홍콩에 버금가는 매우 번화한 현대화 도시로 변모하였다. 1989년에 심천시에는 이미 6,470개의 상공기업이 들어섰고, 공업 총생산액은 116.46억위안에 달했는데, 그 중에서 외자기업 생산액이 59%를 차지했다. 현재 심천은 120여개 국가 및 지역과 무역관계를 맺고 있고, 무역수출액은 중국 전체 수출총액의 7분의 1에 상당한다. 2001년말까지 심천이 세계 70여개 국가와 지역에서 유치한 외국인 투자항목은 2만 7,000여개에 달한다. 실제 이용 외자액은 266억 달러이고, 심천에 투자한 세계 500대 기업은 이미 90여개나 된다. 외국기업들은 심천을 그들 상품의 가공공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기업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연구개발센터를 앞다투어 입주시키고 있다. 높은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심천은 주민의 생활수준도 매우 향상되었고, 주해, 산두, 하문 특구도 경제적으로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었으며, 기타 14개 연해 개방 도시의 경제도 비교적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근래에 중국은 다시 장강 연안의 주요 도시와 내륙의 성정부 소재지, 자치구 인민정부 소재지 및 일부 변경도시, 현, 진을 개방하였다. 특히 1992년 봄, 등소평(鄧小平)은 심천, 주해, 상해를 순시하고 담화를 발표하여 개혁 · 개방의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이로써 중국은 개혁 · 개방과 경제건설의 발걸음을 더욱 가속화 한 동시에 이론적으로도 중대한 인식 문제를 해결하였다. 같은 해 10월 소집한 중국공산당 제14기 전국대표대회와 1993년 3월 소집한 제8기 전인대에서는 등소평의 남방순시 담화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개혁 · 개방 14년 동안의 성과와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등소평이 처음으로 제창한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 이론을 합법적으로 인정하였다. 또한 중국에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형식적으로는 제8차 5개년계획에서 정한 연평균 성장 6%의 경제발전 속도를 8%~9%까지 상향 조정하였다. 이로부터 중국의 개혁 · 개방과 경제건설은 다시 새로운 절정기를 맞이하였다. 중국의 경제특구는 빠른 발전을 지속하여 20년 동안 연평균 성장속도가 30%를 넘어섰다. 1998년 5개 경제특구(심천, 주해, 산두, 하문, 해남)의 GDP는 2,835억 위안으로 전년대비 13.36% 증가했다. 그 중 심천의 GDP는 약 4,000 달러에 달해 중국에서 경제가 가장 발달한 지역 중의 하나가 되었다. 1998년 경제특구의 대외무역 수출입 총액은 이미 677.4억 달러에 달해, 중국의 수출입 총액의 1/5을 차지했다. 현재 중국은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연해에서 내륙으로, 모든 방향의 대외 개방 구조가 형성되어 경제건설의 속도는 더욱 가속화하고 있어, 그들 앞에는 밝은 미래가 펼쳐져 있다. 중국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개혁 · 개방이라는 부국이민(富國利民) 정책을 확고하게 견지해 나갈 것이다. 중화인공화국 수립 이전에 중국의 경제적 기반은 매우 빈약하였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50여년 동안의 발전을 통하여, 특히 근래의 개혁 · 개방을 통하여 중국은 비교적 탄탄한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대발전을 위한 유리한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많은 경제학자들 또한 중국이 현재의 노선과 정책을 계속 견지해 나간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강대한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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