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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수민족

중국 민족상황

변화 발전

 

오랜 역사발전 과정 속에서 소수민족과 한족의 경제적인 왕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빈번하였다. 일찍이 진(秦) 한(漢) 시대부터 각 소수민족은 중원의 한족 지역으로부터 제철, 도자기, 양조, 방직, 제지, 농지관개 등의 선진기술과 생산경험을 도입하여 변경 지역의 경제적 발전을 촉진시켰다. 예를 들면, 지금의 신강 위구르족자치구의 수리시설인 '감아정(坎兒井: 물을 끌어들이는 방법의 일종)'은 바로 서한(西漢) 시기에 중원 지역에서 전래된 것을 개량하여 만든 것이다.

7세기에 당나라 태종은 티벳지역(당시에는 토번이라 하였음)과의 유대관계를 밀접하게 다지기 위하여, 그의 딸 문성공주(文成公主)를 티벳족의 수령 송찬간포(松贊干布, 617∼650)와 결혼을 시키면서, 방직 · 제지 · 양조 · 도자기 등의 기술을 함께 전파하여 티벳지역의 경제적 번영을 촉진시켰다. 한족도 소수민족 지역으로부터 자신들에게는 없는 농작물 품종과 재배기술 및 목축업 생산 경험을 도입하여, 중원 한족 지역의 농업과 목축업 발전을 촉진시켰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소수민족은 한족과 밀접한 교류를 통해, 이로부터 시가 · 신화 · 전설 · 음악 · 춤 · 조각 · 회화 등을 포함하여 풍부한 소수민족 문화를 창조하였다. 11세기 이후에 탄생된 티벳족의 역사시 ≪거살왕전(格薩爾王傳)≫, 키르기스족의 역사시 ≪마나스(瑪納斯)≫, 이족 사니인(撒尼人)의 장편 서사시 ≪아스마(阿詩瑪)≫ 등은 모두 우수한 문학작품들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돈황(敦煌) · 운강(雲崗) · 용문(龍門)의 3대석굴과 크즈얼 천불동(克孜爾千佛洞)은 모두 서부의 소수민족과 한족이 공동으로 창조한 것들이다. 이 외에 과학기술 방면에서도 소수민족은 많은 발명을 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 중국 정부에서는 소수민족의 경제와 문화 발전에 대한 지원을 중요한 정책으로 삼았다. 전국 최고의 권력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내에 민족위원회를 설립하고, 중앙정부기구내에 민족사무위원회를 설립하여, 여러 전문가들이 소수민족 관련 법률과 정책 등을 제정하였다. 중앙정부에서는 소수민족 지역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재정 · 물자 · 과학기술 · 문화 · 인재 등의 원조를 대량으로 제공하였다.

 

첫째, 재정면에서 매년 많은 투자를 하였다.

1950년부터 1991년까지 소수민족 자치구의 기본 건설에 대한 국가의 투자는 1,000억여 위안에 달했다. 기본 건설 투자 외에도 국가에서는 매년 소수민족지구에 많은 재정을 보조해 주고 각양각색의 대출과 구제금 · 생산보조를 해주었다.

예를 들어, 1952년부터 1992년까지 티벳에 대한 중앙의 재정 보조는 누계 170.121억 위안 이른다. 이외에도 국가에서는 일부 생산이 낙후된 소수민족지구에 대해서 조세감면 등의 특혜 정책을 시행하였다.

 

둘째, 물자면에서 매년 국가에서는 농공업 생산품과 각종 재료 ·  기계 · 설비를 대량으로 조달하여 소수민족 지역을 지원하였다. 뿐만 아니라 민족무역 활동 속에서 전국적인 공업상품 분배, 소수민족 지역 우선을 명확히 규정하고 특산품을 보호하였다.

이외에 국가에서는 소수민족 지역의 과학기술 · 문화 · 교육 · 위생사업에 대해서도 매우 많은 지원을 하였다. 예를 들면, 선진 지역의 간부, 과학기술 인원, 대졸 인력 파견을 통한 변방의 건설사업 지원, 의료진 파견을 통한 소수민족 지역에서의 순회의료 실시, 학교 설립과 교사, 의료진 양성을 위한 지원 등이 있다.

 

국가의 강력한 지원과 자체적인 노력 분투에 힘입어 소수민족 지역에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1991년 통계에 의하면, 소수민족 지역의 농업 총생산액은 1952년에 비해 24배 증가하였고, 농업관개 면적은 2배가량 증가하였으며, 식량은 10여배 증가하였고, 가축은 3.4배 증가하였다.

과거 소수민족 지역에는 공업은 거의 없고 단지 소규모의 수공업만 있었으나, 소수민족 지역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실시된 이후에는 방직, 강철, 전력, 석유, 기계, 화학 등의 현대공업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으로 포두강철공사(包頭鋼鐵公司), 크라마이유전(克拉瑪依油田), 유가협수력발전소(劉家峽水電站) 등 의 대형기업이 건설되었다. 1991년에 이르러 소수민족자치구의 공업 총생산액은 1,547.3억 위안에 달했는데, 이는 1952년의 136배로 연평균 11.6% 이상 성장한 것이다. 강철 생산량은 376.9만톤, 원유는 1,363.1만톤, 발전량은 759.4억kWh에 달했다. 1991년 농공업 총생산액은 2,672.7억 위안에 달하여, 1952년에 비해 46배, 1978년에 비해 7배 이상 성장하였다.

과거에는 소수민족 지역의 교통이 매우 불편하였으나, 지금은 티벳을 제외한 모든 소수민족자치구에 철도와 도로, 항공로가 개통되어 있다. 소수민족 지역의 문화, 교육도 매우 낙후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유형의 학교가 설립되어 있다. 1952년에 비해 1991년의 학생수도 초등학생은 7배, 중고등학생은 37.4배, 대학생은 49배로 증가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과거에는 소수민족 지역에 의사와 약품이 부족하여 질병이 유행하고 사망률이 높았다. 그러나 현재는 의료, 위생기관이 많이 증가하여, 과거에 흔히 보였던 극산병(克山病), 나병(癩病), 주혈흡충병(血吸筮病) 등 피해가 심했던 지방성 유행병이 퇴치되면서 국민의 건강수준이 매우 크게 향상되고 평균수명이 크게 연장되었다.

개혁 개방에 대한 새로운 정책의 전환으로, 소수민족 지역의 발전 속도는 과거보다 훨씬 빨라졌다. 소수민족 지역은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으로 개방을 하여 선진 도시나 지역과 협력하여 연해지역의 선진기술, 생산품을 도입하고, 또한 인접 국가로 개방을 하여 국제무역을 발전시키고 있다. 내몽고와 신강은 이미 독립연방 각국과 몽고의 무역발전 기지가 되어 무역액이 신속하게 성장하고 있으며, 광서와 운남은 베트남과 미얀마의 무역발전 전방기지가 되었다. 그 나머지 소수민족자치구도 국제무역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중국의 소수민족 지역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래로 각 부문에서 모두 고속발전을 이룩하였다. 비록 기반이 부실하고 취약하여 한족 지역에 비하면 여전히 격차가 크지만, 중국 정부에서 소수민족 정책을 일관되게 시행하고 있고, 또한 소수민족에 대해서 강력한 지원을 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격차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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