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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소수민족

서 북 지 구

칙륵족()

 

칙륵천,

음산 아래,

하늘은 파오처럼,

사방 들판 덮었어라.

하늘은 푸르러고,

들판은 광활한데,

바람에 쓰러지는 풀사이로 소와 양떼 보이누나.

勒川,

陰山下,

天似穹廬,

籠蓋四野.

天蒼蒼,

野茫茫,

風吹草低見牛羊.

 

이것은 천여년 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유명한 중국 북방 민가 <칙륵가(勒歌)>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칙륵'이라는 이 단어를 보는 즉시 위의 시를 머리에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아주 간단한 어구로 이루어진 이 시에는 중국 북방에 살고있던 칙륵족의 생활상이 형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칙륵족은 역사적으로 '적적(赤狄)' · '적적(赤翟)' · '적력(狄歷)' · '정령(丁零: 丁靈이나 丁令으로 기록된 곳도 있음)' · '고차(高車)' 등의 다른 명칭을 가지고 있다. 사료의 고증에 의하면 칙륵족의 선조는 춘추 말기에 고비사막 이북에 살던 소수민족 '적(狄)'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기원전 7세기경에 적족(狄族)은 여러 갈래로 분열되었다. 그 중에서 적족(赤族)과 흉노가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그들은 자주 왕래하고 교류하면서 언어 생활방식 생산내용 등의 방면에서 많은 일치점이나 유사점을 나타내었다. 이로써 많은 세월이 지나 칙륵족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민족이 파생되었다.

칙륵족은 초기에 흉노 이북의 북해(北海: 지금의 바이칼호 일대)에서 유목생활을 하였다. 전국 시기에 세력이 매우 강대해져 자주 남쪽으로 내려와 중원지역의 각국 변경을 침략하였다. 그 후 중원지역의 각국 연합군에게 섬멸되어, 일부의 칙륵 부락은 중원지역의 각 나라에 귀순하고, 나머지 일부는 고비사막 이북으로 물러나 더 이상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흉노 세력의 급성장과 함께 모돈 선우 시기에 북해 일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칙륵인들은 흉노에게 정복당하였다. 1세기 중엽에 이르러 흉노 정권이 쇠퇴해진 틈을 타서 칙륵인들은 그들의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부분 그 지역에서 탈출하였다. 그 중 남으로 지금의 감숙성 하서(河西)의 회랑 일대로 이주한 칙륵인들은 그 지역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다가 나중에 그 지역 민족에 융화되었고, 서쪽으로 이주한 칙륵인들은 지금의 신강성 알타이산 탈바하타이(塔爾巴哈台) 일대에 정착하여 멀리는 지금의 카스피해까지 갔다. 그 후에도 여전히 주변 기타 지역으로 이주한 칙륵인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남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다.

진한 시기에 고비사막 북부 지역의 칙륵족은 '적씨(狄氏)' 등 6개 부로 분화되고, 위진남북조 시기에 다시 12개의 성씨로 나누어졌는데, 그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한 번도 통일을 이룩하지 못했다.

고비사막 북부의 초원지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칙륵인들은 유목을 위주로 하면서 수렵생활도 하였다. 북위(北魏) 때에는 개인 수공업이 출현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방직업과 수레제조업이 가장 번성하였다. 본래 유목생활을 하던 칙륵인들은 농사를 짓지 않았으나, 고비사막 남부 지역으로 이주한 칙륵인들은 한족의 농경문화를 접하면서 점차 농업생산 활동에 적응하기 시작하였다. 농경문화의 도입으로 칙륵인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을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로 한족에 동화됨으로써 사회적으로 급격한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남북조 시기에 이르러 칙륵족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북위 도무제(道武帝) 척발규(拓跋珪)는 여러 차례 군대를 동원하여 칙륵부를 공격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바이칼호 동부의 칙륵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북위에 흡수되었다. 429년에는 척발도(拓跋燾)가 다시 군대를 동원하여 이니파(已尼坡: 지금의 바이칼호 동쪽 일대)를 공격하자 대부분의 칙륵족 부락은 북위에 투항하였으며, 그때까지 투항하지 않고 있던 나머지 극소수의 칙륵족 부락은 유연족과 흉노족 등의 지배를 받았다. 위(魏) 명제(明帝) 통치 시기에 이르러 칙륵족의 각 부락은 모두 다른 민족에 융화되었으며, 그 후로 칙륵이라는 민족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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