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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소수민족

서 북 지 구

저족()

 

저족은 중국 역사상 주로 3 ~ 6세기 사이에 활약한 비교적 큰 고대민족의 하나이다. 일찍이 오호십육국 시기에 전진(前秦)과 후량(後凉) 등의 독립 정권을 건립하였고, 다시 위진남북조 시기에는 '구지국(仇池國)' · '무도국(武都國)' · '무흥국(武興國)' · '양평국(陽平國)' 등의 반독립 정권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저족은 일찍이 상주(商周) 시기에 지금의 감숙(甘肅) · 섬서(陝西) · 사천(四川) 등의 인접 지대에 분포하고 있었으며, 대부분 무도(武都: 지금의 감숙 성현 成縣 서북)에 집중되어 있었다. 주로 정착생활을 하면서 농업에 종사하고 목축업과 수공업을 겸하였다. 흙담으로 된 판자집에 살았으며 생활풍속은 한족과 비슷하였다.

한 무제 원정(元鼎) 6년(111년) 저족 지역에 군현(郡縣)을 설치한 후부터 저인들은 직접 한왕조의 통치를 받았다. 한말 건안(建安) 연간에 영양군(永陽郡) 원청수현(原淸水縣: 지금의 감숙성 청수 淸水) 북쪽의 저인들은 우두머리 양구(楊駒)의 통솔을 받으며 구지산(仇池山: 지금의 감숙성 서쪽과 서남쪽)으로 이주하였다가, 위진남북조 시기에 구지(仇池)를 중심으로 삼고 무도(武都)를 지역으로 삼아 '구지국(仇池國)'을 세웠다. 그후에 양씨(楊氏)는 무도(武都: 지금의 감숙성 무도 동쪽), 무흥(武興: 지금의 섬서성 약양 略陽), 양평(陽平: 지금의 감숙성 문현 文縣 동북) 등의 정권을 잇달아 세웠다가 서위 북주 시기에 이르러 소멸되었다.

한말 건안 연간 양구의 건국부터 양씨의 여러 정권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는 약 400년에 이른다. 이 기간 동안 양씨 정권은 때로는 북방과 남방의 속국이 되기도 하였지만 줄곧 상대적인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통치 지역이 협소하고 위치가 편벽되어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였다.

십육국 시기에 약양임위(略陽臨渭: 지금의 감숙성 천수 天水 동쪽)의 저인 부견(堅)은 장안(長安)에서 진(秦)나라를 세웠는데, 역사에서 그것을 전진(前秦)이라 칭한다. 전진은 명성이 대단하여 중국 역사상 매우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전진 정권은 부견이 통치한 28년 동안 국력이 가장 강성하여 전연(前燕) · 전량(前凉)과 대(代) 등의 정권을 차례로 멸망시키고 북방을 통일하였다. 부견은 재위 동안 어진 선비를 등용하고 관리의 치적을 정돈하였으며, 집권을 강화하고 유학을 제창하고 생산력을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전진에는 안정과 번영 국면이 출현하게 되었으니, 십육국 시기 중 가장 살기 좋았던 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견 말기 383년에 자신의 강성함을 과신하고 동진을 공격하였으나, 결국 비수의 전투에서 참패하고 부견도 고장(姑藏: 지금의 감숙성 무위 武威)에서 강인(羌人)에게 피살됨으로써 한때 강성을 자랑했던 전진 정권도 와해되고 말았다. 396년 저인 여광(呂光)이 고장에서 대양왕(大凉王)이라 칭하고 정권을 세웠으니 역사에서는 그것을 후량(後凉)이라 칭한다. 여광이 죽은 후 후량 정권은 혼란에 빠져들어 403년 후진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저인들은 관중(關中) 하서(河西) 지구에 정권을 세운 것 외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비교적 큰 규모의 이주를 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한말 건안 연간에 조조는 일차적으로 무도의 저인 5만여명을 부풍(扶風) 천수계(天水界: 지금의 섬서와 감숙 경계의 천수 天水 보계 寶鷄 일대)로 이주시켰다. 부견 연간에 무도 일대의 저인 15만호를 관동의 여러 마을에 정착시켰다. 고향을 떠나온 저인들은 오랫동안 한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점점 한족화하였다. 무도 일대에 남아 있던 저인들도 일부는 한족과의 빈번한 교류를 가지면서 융화되었다. 당대 초기에 이르러서는 지금의 청장고원(靑藏高原)에 자리잡고 있던 토번(吐蕃) 정권이 흥성하여 한차례 무도 일대를 통치하기도 하였다.

그때까지 아직 한족에 동화되지 않고 있던 저인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토번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토번에 융화되었으며, 마지막까지 융화되지 않은 나머지 저인들은 중원의 한족들에 의해 '번인(番人)'이라 불리워졌다. 그리하여 수당 이후에 '저'라는 민족의 이름은 사적에서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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