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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족은 중국의 전국시대부터 서한 전기까지 운남성(雲南省) 전지(滇池) 지구에서 활동한 오래된 민족의 하나이다. 유명한 사학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에 의하면, 전족은 서남이(西南夷)의 일종으로 야랑국(夜郞國) 서쪽에 분포하여 촌락을 이루고 살면서 농업을 경영하였으며, 머리는 뒤쪽에 몽치 모양의 상투를 땋았다. 전족은 고대의 복료(濮僚) 계통에 속하며 지금의 맹고면어(孟高棉語)계 민족(더앙족, 부랑족 등)이나 좡어(壯語)계 민족(좡족 등)과 연관이 있다. 진(秦)나라 때에는 중원에 종속되어 있었으며, 진왕조는 거기에 관원을 두고 관리하였다. 서한 초기에 이르러 전족은 한왕조의 통치를 벗어났다. 기원전 109년, 한 무제 원봉(元封) 2년에 전족은 다시 한왕조에 귀속되었으며, 조정에서는 익주(益州)를 군(郡)으로 삼고 그곳의 수령에게 전왕(滇王)의 옥새를 하사하여 그 민족에 관한 업무를 구체적으로 관리하게 하였다. 전족은 벼농사 위주의 농업을 경영하였으며, 생산 도구는 대부분 청동제였으나 철기도 약간 있었다. 현존하는 청동기 위의 그림을 통해서 농업이나 농업과 관련된 제사 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이 모두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족은 목축업도 대단히 발달하였으나 그것은 농업과 반대로 전부 남자가 담당하였다. 그들은 가축 중에서 소를 가장 중시하였는데, 그것은 육식의 주요 공급처였을 뿐만 아니라 제사에 올리는 중요한 제물이면서 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전족은 특히 청동기 주조와 조형 장식 방면의 수공업도 매우 발달하였다. 기물(器物) 위에는 사람 · 가축 · 새 · 짐승과 오락 생산 및 제례 의식 등의 내용을 많이 조각해 넣었으며, 거기에 조각된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은 비율이 균등하고 생동감있게 묘사되었다. 전족의 주거 형식인 '간란(干欄)'은 대나무로 구성된 2층 건물로서, 아래층에는 가축을 사육하고 위층에는 사람이 거주하며, 건물앞 가운데에는 아래 위층을 연결하는 나무 사다리가 있다. 지금까지도 서남 지역의 많은 소수민족들은 이러한 집에 살고 있다. 전족의 문화는 다양하고 복잡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남방 토착문화를 기초로 하면서 중원문화와 인근의 파촉(巴蜀)문화의 영향도 받아들였으며, 그 외에 어느 정도 북방 초원문화의 요소도 흡수하였다. 이러한 문화는 일찍이 전족의 발전을 따라서 수백년간 꽃을 피웠지만, 한왕조가 전족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직접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각 민족간의 교류가 나날이 빈번해지자 전족문화는 매우 빠른 속도로 한족 문화에 동화되었다. 그리하여 서한 이후에는 전국(滇國)과 관련된 상황을 살펴볼 길이 없게 되었으며, 전족도 하나의 민족으로서 더 이상 역사의 무대 위에 출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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