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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蕃)'은 중국의 고대 티벳족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일컫던 말로서 티벳어로는 'bod'라 한다. 그것은 그들이 신봉하던 원시종교 '본(本: bon)'의 음에서 나왔다. 6세기에 번족은 지금의 티벳자치구(西藏自治區) 산남(山南)지구의 택당(澤當) · 궁결(窮結) 일대에서 흥기하여 형성 당시에 이미 부락연맹 단계에서 노예제정권 단계로 발전하였다. 그 부족의 왕이었던 달포섭새(達布聂賽)와 낭일론찬(囊日論贊) 부자의 재위 기간에는 나라를 아주 잘 다스려 번족의 세력이 현저하게 강화되었으며, 이로써 그들은 통치 영역을 라사하(拉薩河) 유역까지 확장하기도 하였다. 7세기 초에 낭일론찬의 아들 송찬간포(松贊干布)는 군대를 동원하여 고대 강인(羌人)들의 소비(蘇毗: 지금의 티벳자치구 북부 및 청해성 서남부 일대)와 양동(羊同: 지금의 티벳자치구 북부)의 여러 부를 점령하고 도읍을 라사(邏些: 지금의 라사시)로 옮기고 토번(吐蕃)을 세웠다. 송찬간포는 당시의 노예제사회에 적합한 법률과 군정제도를 제정하고 도량형을 통일하고 문자를 창제하였으며, 당왕조 및 천축(天竺: 지금의 인도) · 니파라(泥婆羅: 지금의 네팔) 등 주변 국가와의 폭넓은 교류를 통하여 봉건문화를 받아들였다. 이와 함께 불교가 토번에 전래되어 점차 전국적인 종교로 발전하였다. 8세기 후반 지송덕찬(墀松德贊) 재위 시기에 토번 정권은 전성기에 달하여 그들의 통치 범위는 청장고원(靑藏高原) 외에도 멀리 안서(安西) 사진(四鎭: 지금의 신강 위글자치구 천사남로 天山南路)과 하서 농우(陇右: 지금의 감숙성 경내) 등지에까지 이르렀다. 이 시기에는 불교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으며, 조정에는 '각론(却論: 승려재상)'이라는 관직을 설치하여 불교 승려가 조정의 대권을 장악하였음을 선포하였다. 9세기 초에 지덕송찬과 지조덕찬(墀祖德贊) 부자는 재위 기간 중 불교의 장려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지조덕찬은 평민 한 사람이 출가하면 일곱 집에서 그를 부양하는 제도를 신설하고 그에 상응하는 잔혹한 형법을 제정하여, 이로써 반불교 세력을 진압하고 귀족들의 역량을 견제하였다. 그 결과 지조덕찬은 본교(本敎)를 신봉하던 귀족 권귀(權貴)에 의해 피살되었다. 그 후에 귀족 세력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른 달마(達瑪)는 '불교 금지, 본교 숭상'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그것은 많은 불교도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얼마 못가서 달마는 마침내 암살되고 이로써 왕조도 붕궤하였다. 9세기 후반에 이르러 토번은 사회적 모순과 계층간 갈등이 날로 격화되어 전국적으로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토번 전역을 휩쓴 노예 평민 봉기를 한 차례 거친 후 토번 노예제 사회는 완전히 와해되었다. 번족은 정권을 수립한 이래로 당왕조와의 밀접한 관계 유지를 매우 중시하였다. 당왕조의 문성공주(文成公主)와 금성공주(金城公主)는 토번의 찬보(贊普) 송찬간보 · 지조덕찬과 혼인을 맺었으며, 이를 따라 들어온 중원지역의 우수한 생산기술과 과학지식은 토번의 사회적 발전에 유익한 조건을 제공해주었다. 이와 동시에 토번의 생산품과 장식품 연예 등도 연이어 중원지역으로 전파되었다. 토번의 경제는 농업과 목축업을 위주로 하였다. 주요 농작물은 쌀보리 · 밀 · 메밀 등이었고, 가축은 야크 · 말 · 양 등이었다. 숯 · 제철 · 모직 등의 수공업도 발전하였으며, 강의 양쪽 언덕을 연결하는 적교(吊橋)도 가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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