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통치자들의 잔혹한 억압과 문화적 낙후로
그들은 빈곤과 질병에 시달렸기 때문에 사망율이 매우
높았다. 통계에 의하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전에 허저족은 이미 멸족의 위기에
이르러 전체인구가 30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 중국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허저족은 다른 소수민족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면서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로부터 허저족은 사회 ·
경제 ·
문화적으로 괄목할 발전을 이룩하고 인구도 급격히 증가하여 1990년 제4차
인구조사 때에 전체인구는 4,245명에 달하게 되었다.
허저족은
주로 흑룡강성의 동강시(同江市)와 무원현(撫遠縣) ·
요하(饒河縣)의 강안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일부는 화천현(樺川縣) ·
의란현(依蘭縣) ·
부금현(富錦縣) 지역과 가목사시(佳木斯市)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들은
알타이어계 만주퉁구스어족 만주어 갈래에 속하는 고유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문자는 없다. 오랫동안 한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교류를 가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어와 중국문자를 잘 알고 있다.
허저족은
오르죤족(鄂倫春族)
·
에벵크족(鄂溫克族) ·
만주족과 흑룡강 유역의 토착민족 및 허저족
분포지역으로 이주한 몽고족 ·
한족 등 다양한 민족들과 융화되면서 청대 초기에 형성된
새로운 민족 공동체이다. 그들은 중국 동북의 고대민족이던 '숙신(肅愼)' ·
'읍루(揖婁)' ·
'물길(勿吉)' ·
'흑수말갈(黑水靺鞨)' ·
'야인여진(野人女眞)' 등과 밀접한 연원 관계를 가지고 있다.
허저족은
역대로 당대에는 흑수도독부(黑水都督府), 요대에는 오국부절도사(五國部節度使),
금대에는 호리개로(胡里改路), 원대에는 장강달달로(長江達達路), 명대에는 노이간도사(奴爾干都司)에
편입되어 있었으며, 청대 초기에는 영고탑매륵장(寧古塔梅勒章) 관할 구역이었다.
청 강희(康熙) 54년(1716년) 허저족 지역의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송화강 하류의 3개 허저족 거주지역인 노엽갈륵(努葉葛勒) ·
의극륵(依克勒) ·
호서리(湖西里)에
삼성성(三姓城: 지금의 흑룡강성 의란현 依蘭縣 경내)을 세웠으며, 옹정(雍正) 7년(1733년)에는
부도통(副都統)을 설립하여 직접 관리하였다. 일찍이 청대 초기에 허저족은 팔기(八旗)에
편입되었다. 광서(光緖) 6년(1882년)에 조정에서는 갈이당에 협령아문(協領衙門)을
설립하고 그 아래에 4개의 좌(佐)를 두었으며, 좌령(佐領) 아래에는 '영최(領催)'
등을 설치하여 씨족장에게 관직을 주고 회유하면서 체계적인 통치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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