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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려는 중국 남방의 전설시대에 활동한 민족의 하나로서 간단히 '려(黎)'라 하기도 하며, 그들에 관한 기록은 ≪국어(國語)≫에 처음으로 보인다. 구려는 일찍이 상고시대에 하나의 부족연맹이었으며, 주로 지금의 장강 유역과 호북성 · 호남성 및 강서성 일대에 분포하였다. 구려에는 모두 9개의 부락이 있고 각 부락마다 9개의 씨족이 있었으며 치우(蚩尤)가 그들의 대추장이었다. 구려 부락연맹은 황하 하류와 장강 중하류의 우수한 지리 환경과 기후가 온화한 자연 조건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산력의 향상과 사회 경제적 발전을 끊임없이 이룩하여 중국 동남부에 당당하게 자리잡은 대부락으로 성장하였다. 이 때에 서부에서는 황제(黃帝) 부락이 일어나 그 세력을 점점 넓혀가고 있었다. 황제는 서부지구를 통일한 후에 그 승세를 몰아 동으로 진격하였지만 구려 부락의 강력한 제지를 받게 되었다. 이 두 부락은 황화 중류 지역에서 격렬한 세력 충돌을 일으켰으니, 그것은 원시시대 말기에 발생한 최대의 부락전쟁이었다. 전쟁 초기에 황제 부락의 병사들은 병장기가 낙후되고 오랜 원정에 시달린데다 동부의 지형과 기후에 익숙치 않고 소속 부락들이 이 전쟁에 말려들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번번이 패배하였다. 그 후 염제(炎帝)와 연합하고 그 지역 백성들의 도움을 얻어 마침내 탁록(涿鹿: 지금의 하북성 탁록) 전투에서 치우를 물리쳤다. 이 전쟁에서 패한 구려는 그후로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어 황하 건너 남쪽으로 물러나 지금의 장강 중하류의 호남성 · 호북성과 강서성 등의 광활한 지역을 점거하였다. 그들은 요(堯) · 순(舜) · 우(禹) 시기에 이르러 다시 새로운 부락연맹을 형성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역사서에 등장하는 '삼묘'(三苗: 유묘 有苗 또는 묘민 苗民이라고도 함)이다. 근대의 많은 사학자들은 구려와 삼묘를 지금의 묘족(苗族)의 조상으로 보고 있다. 북방에 남아있던 일부의 구려 부족은 여국(黎國)을 세웠다가 뒤에 주왕조에 멸망되었으며, 다른 일부는 황제와 염제의 부락연맹에 귀순하여 중화민족으로 점점 융화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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