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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곡혼은 중국의 서북지역에 있던 고대 소수민족의 하나이다. 어떤 학자는 그들이 지금의 토족(土族)의 선조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직도 좀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토곡혼족의 명칭은 사람의 이름에 근원을 두고 있다. 3세기 말엽 요동(遼東) 선비족 모용씨 선우 섭귀(涉歸)는 여러 아들에게 봉토를 나누어주었다. 4세기 초엽 섭귀가 죽은 후 그의 적자 혁락양(奕洛양)이 선우의 자리를 계승하였는데, 그는 토곡혼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토곡혼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농서 지역으로 이주하여 지금의 감숙 임하부한산(臨夏桴罕山: 즉 대력가산 大力加山)에서 살았다. 그리하여 토곡혼은 이곳을 근거지로 삼고 인접한 저족과 강족 등을 침공하여 서북지역의 강대국이 되었다. 토곡혼이 죽은 후 그의 장자 토연(吐延)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앙성(昻城: 지금의 사천성 아패 阿坝 지역)의 강족 추장 강총행(姜聰行)이 토연을 죽이자, 토연의 아들 엽연(葉延)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엽연은 사주(沙洲: 지금의 청해성 귀남현 貴南縣 목극탄 穆克灘 일대)에 모극천총부(慕克川總部)를 세운 후, 사마(司馬) · 장사(長史) 등의 관직을 설치하고, 그의 할아버지 토곡혼을 그들의 종족명으로 삼았다. 토곡혼에서 수락간(樹洛干)에 이르기까지 모두 8명의 왕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 중에는 뛰어난 통치력을 발휘한 자도 많았는데, 그들은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고 국정을 부지런히 살피어 국력이 강성하였다. 당시 16국의 국권 분쟁을 틈타 끊임없이 국토를 개척하여 감숙과 청해 사이의 큰 영토를 차지하고, 동으로 도하(洮河) · 용고(龍固: 지금의 사천성 송반 松潘 지구), 남으로 대적석산(大積石山), 서로 적수(赤水: 지금의 청해성 경내), 북으로 황하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통치하였다. 420년경 수락간은 그의 아우 아재(阿才)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는데, 아재는 원정을 끊임없이 나가 수천리에 이르는 저강(氐羌)의 영토를 점령하고 강족 부락의 중심인 요하(요河: 요=水+堯, 지금의 청해성 귀덕현 貴德縣)에 자리할 정도로 그 세력이 매우 강성하였다. 아재의 재위 시절부터 토곡혼은 중원의 왕조에 조공을 바치고 신하라 칭함으로써 밀접한 관계를 수립하였다. 예를 들면 아재는 유송(劉宋) 정권에 의해 사하자사(沙河刺史) · 요하공(요河公)에 책봉되었고, 모귀(慕귀, 귀=目+貴)와 습인(拾寅)은 각각 농서공(陇西公) · 농서왕(陇西王) · 하남왕(河南王) 등에 책봉되었다. 수왕조 시기에는 두차례에 걸쳐 토곡혼을 정벌하고 그 지역에 하원(河源) · 서해(西海) · 선선(선善, 선=善+우부방) · 차말사군(且末四郡)을 설치하였다. 수대 말기에 이르러 토곡혹은 점점 옛 영토를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당대 초기에 토곡혼이 여러 차례에 걸쳐 당왕조의 변경을 침략하자, 635년에 당 태종(太宗)은 토곡혼을 정벌하였으며, 이때부터 토곡혼은 둘로 분열되었다. 서부의 토곡혼은 달연망결파(達延茫結波)가 통솔하여 선선(선善)에 정착하였다가 후에 토번(吐蕃) 정권에 항복하였다. 동부의 토곡번은 모용순(慕容順)이 통솔하여 복사성(伏俟城)에 정착하였으며 당왕조는 그를 서평군왕(西平郡王)에 봉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용순은 병사하고 그의 아들 낙갈발(諾曷鉢)이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당왕조는 그를 하원군왕(河源郡王)에 봉하고 오지야발륵두칸(烏地也拔勒豆可汗)이라 불렀다. 640년에 당왕조는 홍화공주(弘化公主)를 그에게 시집보내고 그를 다시 청해국왕(靑海國王)에 봉했다. 토곡혼 사람들은 주로 말 · 소 · 양 · 낙타 등의 목축업에 종사하였으며, 거기에서 생산된 축산품은 내지에 대량으로 팔았다. 그들은 육고기와 유제품을 주식으로 하면서 약간의 농사도 지었으며, 주요 농작물로는 쌀보리 · 밀 · 콩 등이 있었다. 토곡혼의 상업 활동은 대단히 활발하여, 장강과 황하 하류 및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토곡혼 상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내부적으로 일정한 조세 수입이 없었기에 필요할 때마다 부유층과 상인들에게 세금을 징수하여 그것을 충당하였다. 형벌 제도는 비교적 간단하였는데, 사람을 죽이거나 말을 훔친 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나머지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재물을 바치는 것으로써 죄를 사해주었다. 한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토곡혼의 관제는 중원 왕조의 관제와 매우 유사하였다. 도성 안의 작은 성곽과 궁전은 배치상에서 기본적으로 중원과 동일하다. 귀족이나 대신들은 한족의 복장을 하고 한어(漢語)를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샤머니즘을 믿었으나 서쪽으로 이주한 후에는 점차 불교를 받아들였다. 토번이 흥기한 이후에 감숙 청해 지역으로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하였다. 663년 토곡혼은 토번에게 멸망되었으며, 낙갈발은 수천명을 거느리고 양주(凉州)로 도피하여 당왕조에 귀순하였다. 당왕조는 그의 부하들을 영주(靈州)에 이주시키고 그곳에 안락주(安樂州)를 설치하였으며, 낙갈발에게는 안동주자사(安東州刺史)를 제수하였다. 그의 자손들은 정원(貞元) 원년까지 청해국(靑海國) 작위를 세습하였다. 그 후 토번이 다시 영주를 점령하자 토곡혼은 하동(河東)으로 강제 이주당하였으며, 이때부터 그들은 퇴혼(退渾) 토혼(吐渾)이라 불리워졌다. 오대 시기에 토곡혼은 울주(蔚州) 등지에 흩어져 살았는데, 사타(沙陀)에 귀속되었다가 다시 후진(後晋)에 귀순하였다. 936년 하북 지역이 거란에 넘어가면서 거란에 귀속되었으며, 그들의 후손은 대부분 한족이나 다른 민족으로 동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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