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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소수민족

동 북 지 구

선비족(鮮卑族)

 

선비족은 원래 동호(東胡)의 한 갈래였는데 북으로 이주한 후에 선비산(鮮卑山: 지금의 대흥안령 북단) 일대에 정착함으로써 선비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대략 한 무제(武帝) 시기에 흉노 세력의 점진적인 쇠퇴를 따라서 선비인들은 남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북방의 대초원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를 전후하여 많은 흉노인들이 선비인들 속으로 동화되었다. 2세기 중기에 선비의 유명한 지도자 단석괴(檀石槐)는 탄한산(彈汗山: 지금의 내몽고 상도현 商都縣 부근)을 중심으로, 동으로 부여, 남으로 새북(塞北), 서로 오손(烏孫), 북으로 정령(丁零)에 이르는 부락연맹을 건립하였다. 한 영제(靈帝) 광화(光和) 연간에 단석괴가 죽자 부락연맹은 그와 함께 점차 와해되었다.

서진(西晋) 시기에 선비의 각 부족들은 계속하여 남으로 이주하였는데, 그 중의 어떤 부족들은 한족의 봉건문화를 받아들여 농경 정착생활을 시작하였다. 특히 서진 말기에 북으로 이주한 중원지역의 많은 유민들이 선비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선비족의 봉건화를 가속화 시켰다. 서진의 통치집단이 나날이 부패해짐에 따라 선비의 각 부족들은 발전의 호기를 얻어 강력한 부족들이 잇달아 출현하였다.

서진이 멸망한 후에 선비의 각 부족들은 계속하여 정권을 건립하여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 되었다. 그 중 모용부(慕容部)에서는 전연(前燕, 337 ~ 370), 후연(後燕, 384 ~ 407), 서연(西燕, 384 ~ 394), 남연(南燕, 398 ~ 410)을 잇달아 건립하였는데, 전연과 후연은 모두 한차례 광대한 관동(關東) 지역을 지배하여 역사적으로 16국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유명한 비수(淝水) 전투 후에 척발부(拓跋部)의 척발규(拓跋珪)가 386년에 다시 대국(代國)을 세웠다가 뒤에 나라 이름을 위(魏)라고 개칭하였는데, 역사에서는 그것을 북위(北魏)라 일컫는다.

여러 차례의 정벌 전쟁을 거쳐 마침내 북위가 439년에 북방을 통일함으로써 16국의 혼전 상황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 후 수나라가 세워질 때까지 북방의 정국은 북위가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고, 동위와 서위는 다시 북제(北齊), 북주(北周)로 분열되는 등 일련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지만, 선비족은 줄곧 통치민족으로서 140여년간 북중국을 통치하였다.

선비 귀족들은 중원에 들어온 후에 위진(魏晋) 이래로 형성된 사족(士族) 집단의 퇴폐적인 기풍을 없애고 개혁의 기치를 크게 떨쳤다. 전장(典章) 제도상에서 북위의 효문제(孝文帝)는 균전제(均田制)를 시행하고, 서위의 우문태(宇文泰)는 부병제(府兵制)를 시행하여 당시의 사회 생산을 회복 발전시키고 군사력을 강화시켰다. 그리하여 이 두 제도는 당대(唐代) 중기까지 계승되면서 일정 부분 수당(隋唐)의 번영과 강성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모용씨나 척발씨 통치자를 막론하고 모두 유학을 숭상하였다. 이러한 조치들은 역사 발전의 추세에 순응한 것이기 때문에 북방의 사회 경제는 공전의 발전을 이룩하여 나라가 부흥하고 백성들이 평화롭게 생활하는 새로운 국면이 도처에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서기 581년 북주의 외척 양견(楊堅)은 북주를 물리치고 수나라를 세웠는데, 이는 선비족이 정치적 민족적 실체로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한족 속에 융화되어 한족의 신선한 혈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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