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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소수민족

서 남  중 동 남 지 구

서남이족(西南夷)

  

한(漢)왕조 시기에 지금의 천서(川西) · 운남(雲南) · 귀주(貴州) 경내에 분포되어 있던 소수민족을 통칭하여 '서남이'라 한다. ≪사기≫ · ≪한서≫ · ≪후한서≫ 등에는 모두 그들에 대한 열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사기 · 서남이열전≫의 내용이 가장 상세하다.

서남이 부족은 복잡하고 다양한데, 그 중에서 규모가 비교적 큰 것으로는 '야랑(夜郞)'(지금의 귀주성 복천현 福泉縣 서쪽에서 운남성 동부에 이르는 지대) '전'(滇: 지금의 운남성 중부 지대) · '공도'(都: 지금의 사천성 서창 西昌 지대) · '수'(수=山 아래 雋, 지금의 운남성 보산 保山 지구) · '곤명'(昆明: 지금의 운남성 대리주 大理州) · '도'(徒) · '작도'(都: 지금의 사천성 아안 雅安 지구) · '염방'(冉방: 지금의 사천성 아패주 阿坝州 일대) · '백마'(白馬: 지금의 감숙성 남부와 사천성 접경 지대) 등이 있었다. 당시에 그들이 살던 지역은 파촉(巴蜀)의 서남 변방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남이(西南夷)'라 일컬어졌다.

서남이는 부족간에 균형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그 격차가 심하였다. 그 중에서 야랑 · · 공 등의 부족이 비교적 발달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머리를 감아올리고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촌락을 형성하여 모여살았다. 수 · 곤명 등은 모두 변발을 땋고 물과 풀을 따라 옮겨다니는 유목생활을 하였으며, 도 · 작도 · 염방 등은 농업을 경영하면서 유목생활도 하였다. 서남이는 상업에도 활발하게 움직여 인접한 촉(蜀)나라와 무역을 하였는데, 그들의 주요 생산품인 작마(馬) · 야크털 · 금 · 은 · 동 · 상아 등을 가지고 그들에게 필요한 비단 · 철 · 소금 · 대 · 레몬잼 및 일용품과 교환했다.

서남이의 여러 종족들은 일찍부터 중원 왕조에 종속되었다. 한 무제 건원(建元) 6년(기원전 135년)에 한왕실에서는 야랑에 건위군(爲郡)을 설치하여 행정을 관할하였으며, 그 후에 계속하여 공() · 작() 등에도 하나의 도위(都尉)와 10여개의 현(縣)을 설치하여 촉군(蜀郡)에 예속시켰다. 한대 원정(元鼎) 6년(기원전 111년)에는 지금의 운남성 동부와 귀주성 서부 지역에 장가군(장가郡, 장=조각장+羊, 가=조각장+可)을 설치하고 야랑후(夜郞侯)를 야랑왕(夜郞王)에 봉하였다. 서남이의 다른 부락들도 이것을 보고 모두 귀순을 청하였다. 한 무제는 마침내 공도(都)를 월수군(越수郡)으로, 작도(都)를 침려군(沈黎郡)으로, 염방을 급산군(汲山郡)으로, 백마(白馬)를 무도군(武都郡)으로 각각 고쳤다. 원봉(元封) 2년(기원전 109년)에 한왕조는 군대를 동원하여 전족(族)을 토벌하였다. 이에 전왕(王)이 항복하자 전()에 익주군(益州郡)을 설치하고, 전왕에게 옥새를 하사하여 그로 하여금 그 지역에서 전족에 관한 업무를 계속 관할하도록 하였다.

서한 말기에 야랑왕 흥(興)과 구정(鉤町)의 전우(田禹), 누와후(漏臥侯) 유(兪)가 여러해 동안 교전을 벌이자 한왕실에서는 사신을 파견하여 화해를 주선하였으나 그들은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한 성제(成帝) 하평(河平) 2년(기원전 27년) 장가태수 진립(陳立)이 야랑왕 흥을 죽임으로써 야랑국은 멸망하였다.

왕망(王莽)이 한나라를 찬탈한 후 인근의 각 민족들을 잔혹하게 통치하고 그들의 우두머리를 업신여기자 익주(益州) 월수(越수, 수=山 아래 雋) 등지의 각 민족 백성들은 크게 분개하였다. 이에 그들은 연합하여 무장봉기를 일으켜 기세가 드높았으며, 동한(東漢) 광무제(光武帝) 연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남이의 여러 종족들은 다시 한왕조에 귀순하게 되었다. 한 명제(明帝) 영평(永平) 10년(67년)에 한왕조는 다시 익주 서부에 속국을 세워두고 불위(不韋) · 수당(수唐) 등지의 애뢰족(哀牢族)과 운남(雲南) 예유(예楡) · 비소(比蘇) · 야롱(邪龍) 네 현의 곤명족(昆明族)을 관리하였다. 한 영평 12년(69년)에 애뢰족은 동일 지역 내의 다른 종족들과 함께 동한왕조에 귀순하였으며, 동한왕조는 즉시 지금의 운남성 서남 지대에 영창군(永昌郡)을 설치하였다. 이에 이르러 지금의 운남성 덕굉주(德宏州)와 시솽반나주(西雙版納州)도 완전히 동한왕조의 통치 범위 안에 귀속되었다.

서남이는 비교적 큰 민족집단으로서 그들의 민족 성분은 복잡하여, 근대의 장면어족(藏綿語族: 티벳미얀마어족) · 좡둥어족(壯侗語族)과 맹고면어족(孟高棉語族)의 선조들을 포괄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구분하면 대체로 지금의 운남성 경내의 홍하(紅河) · 난창강(瀾滄江)을 경계로 그 북부와 동부는 장면어족의 선조들이고, 서부 남부 서남부는 좡둥어족과 맹고면어족의 선조들이며, 홍하의 다른 방향에는 이미 여러 종족이 함께 섞여살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지금의 서남지구는 지리적 분단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기간이 흘러간 후에야 비로소 서남지구 소수민족이 형성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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