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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소수민족

동 북 지 구

흉노족(匈奴族)

 

흉노족은 중국 고대 북방 초원지역의 유명한 유목민족의 하나이다. 기원전 3세기부터 그들은 몽고고원과 중원지구에서 약 300년간 활동하면서 중국의 북방 변경을 개척하고 중국의 찬란한 역사문화를 창조하는 데 중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중국과 세계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흉노'라는 명칭은 ≪전국책(戰國策)≫ 등의 선진시대 문헌에 최초로 보이며 '순유(淳維)'라고도 한다. 내몽고, 황하, 하투(河套)지구에서 일어나 상주(商周) 이래의 귀방(鬼方), 훈육(獯鬻), 험윤(猃狁), 융(戎), 적(狄) 등의 부락과 밀접한 연원 관계를 가지고 있다.

춘추시대 말기에 흉노인들과 중원 한족의 교류가 점차 증가하여 그들은 한족의 농업기술을 배웠으며, 특히 중원의 철기문화를 수입하여 흉노사회의 발전을 더욱 촉진시켰다. 전국시대 후기에 흉노는 원시씨족제에서 노예제 단계로 넘어가면서 약탈성이 날로 증강되어 흉노 귀족의 기병들이 자주 변경을 침범하여 노략질을 해 갔다. 이에 진(秦), 조(趙), 연(燕) 3국은 지형에 따라 장성을 수축하여 흉노의 공격을 방어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진나라는 통일을 이룩한 후에 모든 장성을 연결시켰는데, 후세에는 그것을 일러 바로 '만리장성'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기원전 209년 모돈(冒頓)이 아버지를 시해하고 스스로 선우(單于)가 되어 중국 북방 초원에 최초의 노예제 정권을 건립하였다.

이 정권의 특징은 유목경제의 기초 위에 건립되어 행정, 군사, 사회생산의 삼위일체를 이루었다. 이 정권의 형식은 끊임없는 개선을 거쳐 다른 북방 초원민족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모돈 연간(기원전 209년 ~ 174년)은 흉노의 전성기이다. 그들은 중원지역에서 초(楚)나라와 한(漢)나라가 서로 싸우는 기회를 이용하여 동쪽의 동호(東胡), 서쪽의 월지(月氏), 남쪽의 누번(樓煩), 북쪽의 정령(丁零), 격곤(昆)을 차례로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세력 범위는 서쪽으로 총령(蔥嶺), 북으로 바이칼호(貝加爾湖), 동으로 요하(遼河), 남으로 장성에까지 이르렀다. 기원전 140년 한(漢) 무제(武帝)가 즉위한 후 국력이 강성해져 변방의 근심을 제거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흉노를 정벌하였다. 이에 흉노를 무력화시키고 선우를 고비사막 남부지역으로 몰아내자 서역의 여러 종족들은 완전히 한왕조에 귀순하게 되었다.

기원전 58년 호한야(呼韓邪) 선우 계후산(稽侯珊)이 선우에 즉위하면서 흉노의 통치집단 사이에 내분이 발생하여 5명의 선우가 왕위를 쟁탈하는 혼란 국면이 출현하였다. 기원전 36년 호한야는 서한왕조의 후원을 받아 흉노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기원전 33년 호한야 선우는 장안(長安)으로 와서 한 원제(元帝)를 알현하고 한왕실과 혼사를 맺어 인척이 되기를 원하는 의미에서 청혼을 하였다. 그후에 원제는 궁녀 왕소군(王昭君)을 그에게 시집보내고 '영호알씨(寧胡閼氏)'라 불렀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 오랫동안 전해오는 '소군출새(昭君出塞)'의 이야기이다. 한 선제(宣帝) 때부터 흉노 지역은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 신속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서기 9년 왕망(王莽)이 한나라를 찬탈하고 '신(新)'왕조를 건립하여 흉노 등의 소수민족에 대하여 차별과 강압 정책을 시행하였으며, 이것은 백성들의 불만을 불러일으키게 되어 쌍방의 관계는 날로 악화되었다. 동한(東漢) 초기에 흉노는 다시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48년에는 남흉노와 북흉노로 나누어졌다. 남흉노의 선우는 한족문화를 숭상하여 한족과의 화의를 주장하다가 오래지 않아 백성들을 거느리고 귀순하여 모두 국경 안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고비사막 북부 지역으로 물러난 북흉노는 매년 계속된 천재와 전쟁으로 인하여 나날이 쇠퇴해졌으며, 더욱이 인접 국가들의 협공과 끊이지 않은 내분으로 마침내 진퇴양난의 지경에 빠져들게 되었다.

동한왕조는 이 기회를 틈타 91년에 금미산(金微山: 지금의 알타이산)에서 북흉노를 크게 무찔렀으며, 이에 북흉노의 선우는 일부의 신하와 백성들을 거느리고 서쪽 강거(康居)로 도주하였다가, 이해(里海), 흑해(黑海) 북쪽 기슭을 지나 동유럽으로 들어갔는데, 그 지역 사람들은 그들을 '흉인(匈人)'이라 불렀다. 후에 그 지역 토착민족과 융화되어 지금의 헝가리인의 선조가 되었다. 고비사막 북부의 초원에 그대로 남아있거나 남으로 이주하여 국경 안으로 들어온 북흉노인들은 동한 말기에 일부는 조조(曹操)에게 일부는 원소(袁紹)에게 각각 붙어 북중국의 할거 전쟁에 가담하였다.

그 후 선비(鮮卑)유연(柔然)이 연이어 일어나 고비사막의 남북으로 들어와 흉노인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일부는 완전히 선비족이나 유연족과 융화되고, 일부는 새로운 부족이 되었다. 이처럼 정권 교체가 빈번하고 계급갈등과 민족갈등이 복잡하게 얽힌 역사 과정 속에서 흉노인들은 직접 한족에 융화되기도 하고, 혹은 먼저 다른 소수민족에 융화되었다가 다시 한족과 뒤에 일어난 북방 소수민족에 융화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반복적인 융화를 거치면서 흉노라는 이름은 남북조 이후 사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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