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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과 여걸

사인방의 영수, 야심찬 모택동의 아내 강청

 

 [여배우 남평에서 모택동의 아내 강청으로]  [잃어 버린 황제의 꿈]

 

 [ 강청의 어린 시절 ]

 

강청(江靑: 1914~1991)은 문화대혁명 기간에 막강 권력을 휘둘렀던 사인방(四人幇)의 핵심 인물로, 본명은 이운학(李雲鶴)이고, 산동성 제성(諸城) 출신의 여자이다. 제성은 산동 남부의 회하(淮河) 상류에 위치한 현으로 밀, 고구마, 콩, 수수, 옥수수 등의 주산지이다.

강청의 할아버지 이순해(李純海)는 원래 2만여평의 토지를 소유한 지주였으나 아버지 이덕문(李德文) 대에 이르러 파산하였다. 강청은 1972년의 자술에서 "매우 가난한 수공업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하였는데, 사실 그녀의 아버지는 목공소 주인이었다. 이덕문은 처음에 목공소 견습공으로 들어가 뒤에는 목공소 주인이 되었으며, 그 뒤 다시 제성의 성문 부근에 여관을 차렸다.

이덕문의 본처는 원래 지주 집안의 딸이었으나 늙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이덕문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덕문은 50세에 다시 결혼하여 20여세의 젊고 예쁜 난씨(欒氏)를 첩으로 삼았다. 1914년 3월 난씨는 딸애를 하나 낳았다.

그러나 이덕문과 난씨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까지 '이진남(李進男)'으로 지어놓았던 터이라 실망이 컸다. 그들은 할 수 없이 이름을 다시 '이진해(李進孩)'로 고쳐 지었으니, 그녀가 바로 몇 십년 후 중국대륙을 떠들썩하게 흔들었던 강청이다. 강청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 이덕문은 이미 60세였으며, 위로 이복 오빠 이건훈(里建勛: 이간경<李干卿>이라고도 함)과 언니 이운하(李雲霞)가 있었다.

이진해는 6세 되던 해에 다른 여자애들 처럼 전족을 해야만 했다. 당시 산동 지역에는 여전히 전족이라는 악습이 성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이진해는 전족한 발이 너무도 아파서 밖에서 놀 때는 몰래 전족을 풀어 버리고 집에 올 때 다시 전족을 하곤 했다. 이러한 일은 당시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담한 행동이었다. 이진해는 어릴 때 담이 크고 남에게 죽고 못사는 맹랑한 성격의 소녀였다. 그녀의 이러한 성격을 잘 대변해 주는 어린시절의 한 에피소드가 있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이진해의 동네에 단운전(單雲田)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이진해는 그녀와 함께 잘 놀다가도 자주 싸우곤 했다. 하루는 단운전이 이진해를 보고, "넌 첩의 자식이야! 누가 모를 줄 아냐, 네 아빠는 이리, 네 엄마는 호랑이, 넌 새끼 호랑이야! 네 집에는 전부 나쁜 사람들 뿐이구나!"라고 놀렸다.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이진해는 당장 단운전에게 달려들었지만 도저히 그녀를 당해낼 수 없었다.

얼마 후 이진해는 길에서 놀고 있다가 마침 이복 오빠인 이건훈을 만났다. 당시 이건훈은 현(縣) 경찰국 소속 경관으로 한창 거드름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이진해는 이건훈에게 달려가서 단운전과 있었던 일을 낱낱이 일러 바치고 원한을 갚아달라고 부탁하면서 분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건훈은 그녀에게 반드시 보복해 줄테니 안심하라고 약속했다. 다음날 이건훈은 순경들을 데리고 단운전의 집으로 찾아가서, "우리집을 이리 집안이라 욕한 놈이 누구야! 어서 나와!" 라고 외쳤다. 단운전은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담장 모퉁이에 꼭 숨어 있었다. 단운전의 아버지가 나와서 애들 끼리 싸우다 그런 것이니 참아라고 하면서 대신 사과를 하였지만, 이건훈은 오히려 자식교육을 잘못 시킨 부모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하면서 데리고 간 순경들과 함께 구타를 가했다. 이에 단운전의 아버지는 만신창이가 되도록 맞았으며, 그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강력하게 항의하던 단운전의 삼촌도 이건훈과 순경들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

이 일로 단운전의 삼촌은 억울하게 죽고 말았으며, 단운전의 숙모는 생계를 잇기 위해 두 살밖에 안된 자기 애를 버려두고 남의 집 유모로 들어가야만 했다. 얼마 후 두 살 짜리 애도 엄마 젖을 먹지 못해 굶어 죽었다. 이때 이진해의 나이는 불과 일곱 살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단운전에게만 보복할 생각이었지만 그 결과는 너무도 엄청난 것이었다. 이건훈이 단운전의 집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을 때 이진해는 열심히 단운전을 찾고 있었다. 그녀는 겁에 질려 숨어있던 단운전을 발견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겁나냐? 모두 너 때문에 생긴 일이야, 또 한 번 욕해 봐!"

 

이 일이 있은 뒤로 동네 아이들은 모두 그녀를 피해다녔으며 아무도 그녀와 함께 놀지 않았다고 한다.

이진해는 강청이 어릴 때 집에서 부르던 이름이고 그녀의 공식적인 이름은 이운학(李雲鶴)이다. 그녀는 소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정식 이름이 없었다. 그때 그녀가 다니던 학교의 이사장 설환등(薛煥登)이 그녀의 다리가 가늘고 길다고 해서 '운학(雲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그녀가 자술에서 '군계일학' 운운하면서 작명 경위를 설명한 것은 유명해진 뒤에 꾸며낸 이야기로 보여진다.)

이덕문은 성미가 급하고 거칠어 걸핏하면 자기 아내에게 손찌금을 하곤 했다. 어느 원소절(元宵節: 정월 대보름)에 이운학의 어머니 난씨는 실수로 넘어져 그릇을 깨뜨렸다. 이에 화가 난 이덕문이 삽으로 마구 때리는 바람에 그녀는 손가락이 부러졌고, 놀라서 울던 이운학은 따귀를 얻어 맞아 이가 부러졌다. 더 이상 고통과 멸시를 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난씨는 이운학을 데리고 그 집에서 나와서 살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가진게 없었던 난씨는 생계를 잇기 위하여 남의 집 종살이라도 해야 했다. 그녀는 이운학을 친척집에 맡겼으며, 이로부터 이운학에게는 가난하고 힘든 생활이 계속 되었다.

 

 [강청의 어린시절]  [여배우 남평에서 모택동의 아내 강청으로]  [잃어 버린 황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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