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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가의
진시황 암살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국책(戰國策)≫「연책(燕策)」과
고대소설 ≪연단자(燕丹子)≫에도 기록되어 있으나 ≪사기≫의 기록보다는
덜 객관적이라 할 수 있다.
형가는
평소 술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였지만 성격이 침착하고 사려가 깊었으며,
검술을 좋아하면서도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축(筑)을 잘 타는
고점리(高漸離)와 함께 연(燕)나라 시장에서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술이 취하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등 자유분방하게 행동하기도 하였지만, 결코
시정잡배들처럼 무작하거나 경솔하지도 않았다. 한번은 유차(楡次)라는
곳에서 개섭(蓋聂)과 검술을 논하다가 의견충돌이 일어나 개섭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그는 더 이상 개섭을 상대하지 않고 그곳을 피해
버렸다. 또 한단(邯鄲)에서는 노구천(魯句踐)과 장기를 두다가 말다툼이
일어나 노구천이 화를 내며 그를 꾸짖을 때에도 형가는 역시 그 자리를
묵묵히 피해 버렸다. 즉 형가는 사소한 일로 다른 사람과 다투는 일반
소인배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형가는
천하를 주유하며 호걸들과 사귀다가 연나라에 들어갔다. 연나라의 협사(俠士) 전광(田光)은
형가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그를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하면서 잘 대우해주고
있었다. 그때 마침
연나라의 태자 단(丹)이 진(秦)나라에서 인질로 있다가 도망쳐왔다.
태자 단은 예전에 조(趙)나라에도 인질로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조나라에
살고 있던 진왕(秦王) 정(政: 후세의 진시황)과 소년시절을 함께 지냈다.
그런데 진왕 정이 왕위에 있을 때 태자 단이 진나라에 인질로 가게 되었으며,
진왕 정은 그러한 단을 잘 대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태자 단은 원한을 품고 연나라로 도망쳐와서는 진왕 정에게 받은 수모를
갚고자 천하의 용사들을 불러모았다. 태자 단은 먼저 전광을 불러 자문을
구하였으나, 전광은 자신은 이미 노쇠하여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 그에게 형가를 소개시켜 주기로 하고 나왔다. 태자 단은 전광을
배웅하면서 이 일에 대한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하였다. 전광은 집으로
돌아와 형가에게 태자 단을 찾아가서 도와주라는 말을 하고 자신은 자결하여
버린다. 태자가 그에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한 것이 자기를 믿지
못하여 한 말이라고 여긴 전단은 죽음으로써 태자와의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형가를
상빈(上賓)으로 맞이한 태자 단은 진나라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고 있다는
뜻을 형가에게 전하고 도움을 청하였다.
"지금
진나라는 이욕에 사로잡혀 천하의 땅을 다 차지하고 천하의 왕들을 자기의
신하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 한(韓)나라를 빼앗고 한왕을 포로로
잡았으며, 남쪽으로 초(楚)나라를 치고 북쪽으로 조(趙)나라에 임하였습니다.
…… 조나라가 진나라의 수중에 들어가면 그 화는 바로 연나라에 미칠
것입니다. 연나라는 약소하고 잦은 전쟁에 지쳐있으니, 지금 온 나라의
힘을 다하여 싸워도 진나라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 저의 생각으로는
천하의 용사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진왕을 설득해야 될 것 같습니다. 진왕을 위협하여 제후들에게서 빼앗은 땅을 모두 다 돌려주게
하는 것이 최선책일 것이나, 그럴 수 없다면 그 기회에 그를 암살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형가는 일단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며 사양하였으나 재차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하게 부탁하는 태자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결국 수락하였다. 그날부터
태자는 자주 진수성찬과 미녀들을 형가에게 제공하고 그가 좋아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었다.
그러나 삼엄한 경비 속에 있는 진왕을
암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진왕에게 접근할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었다.
이때
진나라 장수 번어기(樊於期)가 진왕에게 죄를 짓고 연나라로 도망와서
태자 단에게 의탁하고 있었다. 진왕은 번어기의 구족을 멸하고 그의
목에 수천금의 현상금을 걸었다. 형가는 번어기의 목과 연나라 독항(督亢)의
지도가 있으면 진왕에게 접근할 수 있겠다고 태자 단에게 말했다. 태자
단은 의지할 곳이 없어 자기를 찾아온 번어기를 차마 죽일 수 없어 다른
방도를 찾아보자고 하였다. 그러자 형가는 직접 번어기를 찾아가서 말했다.
"장군의
머리를 얻어서 진왕에게 바치면 진왕은 반드시 신을 접견할 것입니다.
그때 신이 왼손으로 그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가슴을 찌르겠습니다.
그러면 장군의 원수를 갚고 연나라의 치욕을 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번어기는 자신이 꿈에도 그리워하던 일이라 하면서 기꺼이
동의하고 즉석에서 칼을 뽑아 직접 자신의 목을 베었다.
당시에
진나라는 조(趙)나라를 멸망시키고 연나라의 남쪽 접경지대까지 진격해
있었다. 형가는 태자 단이 마련해준 비수를 가지고 행장을 갖추어 연나라의
용사 진무양(秦舞陽)이라는 사람과 함께 진나라로 떠났다. 그들이 떠나는
날 태자 단과 그 일을 알고 있던 빈객들은 역수(易水)까지 나와서 그들을
전송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이번에 가면 살아서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흰옷에 흰갓 차림으로 나왔으며, 그들 중에는 형가의 친구 고점리도
와 있었다. 장도에 오르자 고점리는 축을 치고 형가는 그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바람은
소소하고, 역수는 차가와라.
장사
한 번 떠나면, 다시 오지 못하리."
비장한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형가는 두눈을 부릅뜨고
머리털을 세운채 태자가 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진무양을
데리고 마차에 올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쪽으로 달려갔다.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도착한 형가는 진왕의 측근인 몽가(蒙嘉)에게 뇌물을
써서 진왕을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진왕의 접견 허락을
받은 형가는 번어기의 머리를 넣은 함을 받들고, 진무양은 비수를 숨겨둔
지도를 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이렇게 긴박한 순간에 진무양은 갑자기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여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진왕과 진나라의
신하들이 그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자 형가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저
사람은 북방의 야인으로 아직까지 천자를 뵈온 일이 없어서 저렇게 떨며
두려워하고 있으니, 대왕께서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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