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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표(林彪: 린뱌오,
1906~1971)는
원래 군사가였으나, 후에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의 반역자가 되었다.
본명은 임육용(林育蓉)으로 호북성 황강현(黃岡縣) 출신이다. 1925년
북벌전쟁에 참가하여 엽정독립단(葉挺獨立團)에서 소대장을 역임했다.
1927년
중국공산당이 주도한 '8. 1' 남창봉기(南昌起義)에 가담하였다가
후에 부대를 따라서 정강산(井岡山) 혁명근거지로 들어갔다. 토지혁명
전쟁 시기에는 중국공농홍군의 대대장, 연대장, 종대사령원(縱隊司令員),
군단장, 군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강서 동남부와 복건 서부에 위치한
중앙혁명근거지의 제1차~제5차 공산당토벌 반격작전을 수행하고, 홍일방면군(紅一方面軍)의
장정에 참가하였다. 섬북(陝北)에
도착한 이후 중국항일홍군대학(中國抗日紅軍大學), 항일군정대학(抗日軍政大學)
교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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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전쟁 발발 후에는 팔로군(八路軍) 115사단 사단장을
역임하고, 섭영진(聂荣臻)
등과 함께 산서 동북부에서 평형관(平型關)전투를 지휘했다.
1938년
소련으로 가서 의사검진을 받고 1942년 1월 중국으로 돌아왔다. 해방전쟁
시기에는 동북민주연합군 총사령관, 동북군구·제4야전군·화중군구
사령원 등을 역임하고, 요심(遼沈)전투와 평진(平津)전투 등에서 지휘관으로
참전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중앙인민정부 위원, 중남군정위원회 주석, 중앙인민정부
인민혁명군사위원회 부주석, 국무원 부총리, 국방부 장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중국공산당 중앙 부주석 등을 역임하였다. 1955년
중화인민공화국 원수에 임명되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반혁명집단을 조직, 강청(江淸)과
결탁하여 당과 국가 최고권력을
찬탈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1971년
9월 8일, 임표는 구데타를 일으켜 중국공산당 중앙 주석 모택동(毛澤東)의
시해를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기밀이 누설되어 실패하였다.
1871년
9월 13일, 아내 엽군(葉君), 아들 임립과(林立果) 등과 황급히 비행기로
탈출하였으나, 몽고 뚜얼칸(都爾汗) 지구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였다.
1973년
8월 20일, 중국공산당 중앙은 그의 당적을 말소하였다. 1981년
1월 23일, 중화인민공화국 최고인민법원 특별법정에서는 그를 임표 반란사건의
주모자로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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