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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일찍이 뛰어난 지략으로 유방의 천하통일을 보좌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초(漢初)에는
유방이 유씨(劉氏) 이외의 왕(제후)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고조
10년(BC197) 유방이 양하후(陽夏侯) 진희(陳희, 희=豕+希)의 반란을 평정하러
출정하였을 때, 수도 장안(長安)을 지키고 있던 여치는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의
반란 정보를 입수한 후, 마침내 승상 소하(蕭何)와 모의하여
한신을 궁궐로 불러들여 죽이고 삼족을 멸하였다.
얼마
후 유방은 진희의 반란을 평정하고 낙양(洛陽)으로 돌아온 후에 양왕(梁王) 팽월(彭越)이
반란을 도모하려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유방은
즉시 팽월을 체포하였지만 모반의 증거가 없자 그를 평민으로 강등시켜
파촉(巴蜀)에 유배 보내기로 하였다. 도중에 팽월은 여치를 만나
그녀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집으로 돌아가 여생을 편히
쉴 수 있도록 유방에게 잘 말해줄 것을 청하였다. 낙양으로 돌아온
여치는 유방에게, "팽월은
용맹한 장수이니 그를 촉(蜀)에 들여보낸다면 범을 산에 풀어주는
것과 같아서 크나큰 후환이 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은 들은 유방은 즉시 팽월을 죽여 버렸다.
여치의
슬하에는 아들 유영(劉盈: 후의 혜제)과 딸 노원공주(魯元公主)가
있었다. 그러나 유방은 유영의 성격이 나약하다는 것을 이유로 그가
총애하던 비빈(妃嬪) 척부인(戚夫人)의 아들 조왕(趙王) 유여의(劉如意)를
태자로 삼으려고 하였다. 척부인의 눈물어린 호소와 유방의 결심으로
유여의는 거의 태자에 오를 뻔 했지만, 장량(張良)을 위시한 여러
대신들의 간언과 여치의 노력으로 유여의는 태자에 오르지 못하고
유영이 태자의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고조
12년(BC 195) 4월 유방이 죽고 여치의 아들 유영이 제위를
계승하였으니 그가 한나라의 2대 황제 혜제(惠帝)이다. 이에 황태후가
된 여치는 어린
혜제를 대신하여 정사를 보면서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여태후는
유방의 사랑을 받았던 척부인과 태자의 자리를 넘보았던 조왕 유여의를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다. 먼저 척부인을 영항(永巷: 원래는 궁녀들이
살던 곳이었으나 후에는 죄를 지은 비빈을 감금하는 곳으로 사용되었음)에
감금한 다음 조왕 유여의를 제거할 틈만 노리고 있었다.
혜제
원년(BC 195) 12월, 혜제가 새벽에 활쏘러 나간 틈을 이용하여
여태후는 혼자 남아있던 유여의에게 독주를 먹였다. 아침 해뜰 무렵
혜제가 돌아왔을 때 유여의는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해있었다.
그후
여태후는 다시 척부인의 손과 발을 자르고 눈을 뽑고 귀를 태우고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인 다음 '돼지우리'(≪사기≫「여태후본기」에는
'측중(厠中)'이라 되어 있는데, 혹자는 이를 '변소'로 풀이하기도
함)에 가두고 그녀를 '사람돼지'라 불렀다.
이
사실을 안 혜제는 여태후의 야만적인 행위에 충격을 받고 병을 얻게
되었다. 그는 여태후에게 사람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이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저는 태후의 아들로서 더 이상 천하를
다스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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