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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래(周恩來: 저우은라이,
1898~1976)는
마르크스주의자, 무산계급혁명가, 정치가, 군사가, 외교가이다. 중국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요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면서 중국인민해방군 창설자
중의 한 사람이다. 1949~1976년에 중화인민공화국 총리를 역임하였다.
본적은 절강성 소흥(紹興)이고, 강소성 회안(淮安)에서 태어났다.
1917년
천진(天津) 남개학교(南開學校)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1919년 중국으로 돌아가서 9월에 남개대학(南開大學)에
입학하였다. 5. 4운동 중에는 천진 학생계의 대표가 되었으며, 다른
활동적인 사람들과 함께 진보단체인 각오사(覺悟社)를 조직하였다.
1920년
프랑스로 건너가서 혼자서 어럽게 유학하였다. 1921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1922년에는
조세염(趙世炎: 공산당 초기 주요 인물) 등과 유럽 중국소년공산당(이듬해
중국사회주의 청년단 유럽 지부로 개명하였음)을 조직하였다.
그
후 중국사회주의 청년단 유럽 지부 서기, 중국공산당 유럽 지부장을
역임하였다.
1924년
가을 중국으로 돌아간 이후 광동 황포군관학교 정치부 주임, 국민혁명군
제1군 정치부 주임, 제1군 당부대표 등을 역임한 다음, 계속하여 중국공산당
광동지역 위원회 위원장, 상임위원 겸 군사부장을 역임하였다. 1927년
3월 북벌을 시작한 국민혁명군이 상해 인근에 도달하자, 상해 노동자들의
제3차 무장봉기를 영도하여 상해에 주둔하고 있던 북양군벌 부대를 몰아내었다.
5월 중국공산당 제5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앙위원에 당선되었으며, 5기
1중전회에서는 중앙정치국 위원에 당선되었다. 7월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임시 상무위원회 위원(총 5명)을 역임하였다.
국공합작이
결렬된 후 그는 하룡(賀龍), 엽정(葉挺), 주덕(朱德), 유백승(劉伯承)
등과 함께 8월 1일 강서성 남창(南昌)에서 무장봉기를 이끌고 중국공산당
선봉위원회 서기를 역임하였다.
1928년
중국공산당 6기 1중전회에서 정치국 상임위원에 당선되었으며, 그후
중앙조직부장, 중앙군위 서기를 역임하였다. 당시 중국공산당 중앙은
상해에서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중국공산당 중앙의
안전을 보장하고, 각지의 공산당 무장투쟁을 지도하며, 국민당 통치구에서의
혁명사업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실질적으로
중국공산당 중앙의 주요 책임자였다.
1931년
이후 중국공산당 소비에트지구 중앙국 서기, 중국 공농홍군 총정치위원
겸 제1방면군 총정치위원, 중앙혁명군사위원회 부주석을 역임하였다.
1933년 봄, 주덕과 함께 홍군을 지휘하여 국민당 군대의 중앙혁명근거지에
대한 제4차 토벌을 물리쳤다. 1934년 10월 장정에 참가하였다.
1935년
1월, 귀주성 준의(遵義)에서 거행된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즉
준의회의)에서 모택동(毛澤東)의 주장을 지지하고, 계속하여 중앙의 주요 군사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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