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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국 당 대 문 학

1 9 4 9 년 이후 ~ 현재

시대와의 합일점을 찾아서 : <아우슈비츠수용소 이야기>

 

50년대 초기의 문학도서 중에서 어떤 작가를 막론하고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 찬송 형태의 작품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역사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시대적 인식도 달랐다. 많은 "찬송"의 작품들을 지금 읽어보면 예술적 감화력이 전혀 없다. 이것은 오늘날의 독자들이 그 시대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호풍의 <시간은 시작되었다>에는 비록 많은 격식화된 언어들이 섞여있긴 하지만, 거기에는 웅대하고도 진지한 감정(주로 <청춘곡> 속의 서정시)과 선열들에 대한 간절한 회상(주로 <안혼곡>의 일부 내용)이 흘러넘치기 때문에, 지금 그것을 읽어보아도 여전히 감동적이다.

그러나 국통구 출신의 작가들은 대부분 새로운 정권에 대하여 "승리자"의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정신을 학습하여 자아교육을 바탕으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가들은 신중한 자세로 찬송 형태의 작품을 창작하였으서도 대부분 서정의 주체를 "시대적 목소리"로 확대하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긍정적인 요소의 능동적 발휘를 통하여 시대와의 합일점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5.4" 신문학 전통은 그 자체가 강렬한 민주적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그 시대의 투쟁성과 결합될 수 있었다. 이로써 시대에 대한 찬송은 주관적인 감정과 적절한 관계를 구성하게 되면서, 그들의 "찬양가"도 비교적 성실한 서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시인 장극가(臧克家)가 1949년 말에 쓴 단시 <어떤 사람(有的人)>에서는 노신의 기념이라는 합일점 위에 시대적 정신을 결부시켰다. 이 시의 명구 "어떤 사람은 살아있지만, 그는 이미 죽었고, 어떤 사람은 죽었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다.(有的人活着, 他已經死了, 有的人死了, 有的人活着.)"에서는 두 개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자세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이것은 당시는 물론 반세기에 걸친 민족적 위기 속에서도 무력한 인간에 대한 증오와 혁명열사에 대한 추모의 구절로 자주 인용되어 왔다. 또 노사(老舍)는 미국에서 중국으로 돌아온 후 북경시민의 생활상을 바탕으로 ≪용수구(龍須溝)≫ 등의 연극 대본을 창작하였다. 그는 여기에서 북경시민의 생활 변화를 표현하면서 새로운 시대와 북경시정부를 찬양하였는데, 주제는 신선하지만 작품의 제재와 창작 사상은 모두 일관된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비교적 우수한 작품에 속하는 것들이다. 여기에서 중점적으로 소개할 산문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야기(奧斯威辛集營的故事)>는 바로 이러한 대표성을 가진 작품이다.

작가 파금(巴金)은 "5.4" 신문학운동 시기에 현실을 제대로 인식한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그는 일찍이 국제공산주의운동 중에 아나키즘이론을 신봉하여 사회활동에도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는 1929년 초에 발표한 첫 번째 소설 ≪멸망(滅亡)≫에서 자신의 사회혁명 경험을 제재로 사회 전제제도에 대한 증오를 토로하였다. 30년대에 중국의 아나키즘운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파금은 문학이라는 형식을 빌어 대량의 소설과 산문을 창작하여 내심의 고민과 출로를 찾으려는 욕망을 쏟아내었다. 이 소설은 발표되면서 사회적으로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젊은 독자들의 폭넓은 환영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 ≪격류삼부곡(激流三部作)≫과 ≪애정삼부곡(愛情三部曲)≫ 등은 사회 전제제도와 봉건 가족제도를 강력하게 비판하여 젊은이들의 반항정신을 고취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항전 후기에 그의 창작 풍격은 점점 냉정하게 변화되었는데, 대표작 ≪게원(憩園)≫, ≪한야(寒夜)≫ 등에서는 하층 인물의 불행한 운명에 대하여 깊은 인도주의적 동정을 기탁하였다. 50년대 이후에 파금은 명망 높은 진보적 작가로서 사회적 존중을 받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이상이 시대에 부합되지 못하자 아나키즘에 대한 홍보를 스스로 포기하고, 열정적인 문풍으로써 새로운 정권과 새로운 시대를 찬양하는데만 열중하였다. 이 시기에 파금은 주로 정부의 주선으로 외국을 방문하고(한국전쟁의 "생활체험"을 포함), 각종 기행문, 수필과 지원군의 영웅적인 이야기 등을 썼다. 그러나 많은 창작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익에만 급급한 창작 동기하에서는 그의 뛰어난 창작력을 발휘하기 어려웠기에, 그의 특기인 서정 예술도 별다른 내용을 전달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보기드물게 아주 우수한 작품이 나왔으니, 그것은 바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야기>이다.

이 산문은 작가가 수용소를 견학하는 과정을 가식없이 진솔하게 기록하고, 수용소의 역사적 자료들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역량은 매우 강렬하다.

첫째, 이것은 제재의 힘에 의해 결정되었다. 나치스가 유태민족을 대량 학살한 죄행 앞에서 이 역사적 비극을 되새기는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조용히 역사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는 객관적인 서사 방식을 통하여 독자들을 직접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안내하고, 이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적 사실을 개인의 마음속에 흐르도록 하였다. 이것은 바로 이 산문에서 가장 적절한 표현 형식이다.

둘째, 작가의 서사 속에서 그가 객관적으로 견학 과정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떠한 형식의 견학일지라도 그렇게 상세한 자료와 완벽한 인상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견문록의 서사 구조만 원용하고, 관련 저작과 회고록을 탐독한 후에 세심하게 이 문장을 구성하였던 것이다. 많은 자료들이 하나하나 작가의 필하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수용소에 펼쳐진 내용과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그것은 완벽하고 풍부한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셋째, 제한된 범위내에서 폴란드인 아라이크스를 형상적으로 묘사하였다. 아라이크스는 어릴 때부터 수용소에서 자랐으며, 그의 부모도 그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나중에 이 젊은이는 수용소를 견학온 사람들을 응접하는 일을 맡게 되는데, 이 자체가 바로 가혹한 현실이었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의 냉정하고 강인한 태도를 묘사하였다. 작가는 그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였다.

"평소 고집이 센 아라이크스가 지금은 차분해졌다. 그의 눈빛은 여러 곳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 자기 부모의 발자취를 찾고 있는 것일까? 흘러간 공포의 날들을 회상하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그는 머리를 들어 우리를 쳐다본 다음에 곧바로 촉촉한 땅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이 모두 타고남은 사람들의 뼈라구, 이 하얀 부스러기들이 말이야!' 나는 내 발밑을 보았다. 땅속에는 분명 하얀 가루들이 많이 섞여있었다."

 

이 참혹한 학살 현장은 아라이크스의 냉정한 겉모습에 숨겨져있는 마음속의 커다란 아픔을 두드러지게 부각시켰다. 그는 분명 직업적으로만 자기 민족의 고난을 멍청히 구경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파금이 신봉한 아나키즘은 그 자체가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주의는 그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20세기 인류문명은 잔혹성과 야만성을 강력하게 제지할 능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야만성을 강력하게 폭로하여 인류 내부에 존재하는 문명의 위기를 경계시켰다는 데서 그 위대성이 인정된다. 이것은 어떤 인도주의자든 반드시 부딪혀야 할 문제이다. 파금의 신념에는 인도주의를 위한 용기있는 투쟁 정신이 충만하였다. 20년대에 미국정부의 노동운동 지도자 사크와 판자이트 박해를 반대할 때에, 30년대에 파시스트 군대의 스페인 침공을 반대할 때에, 파금은 모두 이 세계적인 투쟁에 참여하여 중국 지식인의 국제인도주의 의무를 다하였다. 따라서 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죄악에 대하여 묘사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의 인도주의적 고통은 50년대 초기 중국정부의 제국주의 반대 입장과도 완전히 부합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산문의 결미에서는 작가가 현장을 떠날 때의 심정을 비통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 나는 사람이며,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나의 신경은 이렇게 많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도처에 늘려있는 하얀 뼛가루를 보고 내가 무슨 작별의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작가는 차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대로 서있었다. 이러한 서정 방식과 심리 묘사는 당시에 고조된 시대적 투쟁 정신과도 부합된다. 만약 다른 장면에서 이러한 표현이 나왔다면 그것은 "소부르조아적 사상 감정"의 표현이라고 비판받았겠지만, 이러한 국제적인 제재와 반나치스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그것은 당연히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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