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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령의 창작생애
정령(丁玲)은 본명이 장위(蔣偉), 자가 빙지(氷之)라고 알려져 있다. 1904년 호남성의 명문지주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찍 부친을 여의었으나, 강인하고 다정한 성품을 지닌 모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학시절에 5.4운동을 겪은 그녀는 "과학과 민주를 요구하고, 자유와 개성해방을 추구하는 전투적 정신이 나를 길렀다"고 술회하고 있듯이, 5.4신문화운동의 영향으로 변발을 자르고 시위와 강연을 주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하였고, 한편으로는 문예물들을 탐독하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갔다.
1922년 정령은 상해로 나와서 상해평민학교와 상해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24년에는 북경으로 가서 호야빈(胡也頻)을 만났고, 오래지 않아 그와 결혼을 하였다. 그들은 함께 각국의 명작들을 탐독하고 토론하여 문학에 대한 공부를 계속해 나갔다. 1927년 4.12구데타 이후 그녀는 정신적으로 극히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정령'이란 필명을 사용하여 소설 <<몽가(夢珂)>>를 발표하였다. 그녀는 "내가 왜 그때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적막했기 때문이다. 사회에 대한 불만, 아무런 출로가 없는 자신의 생활에서 할 말은 무척 많았지만 들어줄 사람을 찾을 수 없었으므로 ..... 하나의 방편으로 붓을 들어서 스스로를 대신해서 이 사회를 분석하고자 했다"고 창작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술회하고 있다. 정령의 창작생애는 1927년 가을부터 48년 <<태양은 상건하를 비추네>>를 발표하기까지를 한 분계선으로 하면, 세 단계로 구분할 수가 있다.
첫 번째 단계는 1927년부터 29년까지 기간으로, 대략 15편의 소설을 창작했는데, <<암흑 속에서>> <<한 여인>> <<자살일기>> 등의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주로 5.4신문화운동의 퇴조기에 진보적 사상을 지닌 지식여성들의 신세와 운명을 집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녀들은 대부분 도시에 거주하면서 봉건사상과 문명의식이 혼재되어 있는 기형적인 사회에서 우울증에 젖어 있다. 주인공들은 봉건예교를 멸시하고 개성해방을 추구하지만 개인적이고 협소한 의식으로 인해 감상에 빠지고 반항의 태도 또한 유약하여 올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물들로 형상화되어 있다. 일기체 형식이나 내면의 심리변화를 독백하는 형식을 주로 사용하여 여성심리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이 시기 정령 창작의 특징이다. <사비여사의 일기(莎菲女士的日記)>는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 출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 지식여성 사비의 내면적 고통과 혼란을 묘사하였는데, "5.4 이후 해방된 여성이 애정과 성애(性愛)의 모순에서 갈등을 겪는 대표적 형상이며, 시대의 고민으로 상처입은 여성이 반역의 절규를 부르짖는 모습"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둘째 시기는 1930년부터 36년까지의 기간으로 '좌익작가연맹'이 성립되고 무산계급문예운동이 활발히 전개됨에 따라 정령의 사상과 창작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이 편집을 맡던 <<북두(北斗)>>에 <창작에 대한 몇 가지 구체적인 의견>을 발표하여 자신의 작품에 대한 엄격한 비판을 하는 동시에, "대중을 주인으로 삼고," "노동자 농민 병사의 대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위하고 자신과 자신의 커다란 이익을 위하여 힘든 투쟁을 수행하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나아가서 "상상에 의지해 그려낸 영웅과 같은 노동자나 농민은 사회의 사실과 부합하지 않으므로 필요 없고", "당신의 사상, 당신의 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녀의 변모는 작품창작에도 반영되어 <<1930년 봄 상해>>(제1, 제2편) 등과 같이 혁명과 연애를 주제로 한 소설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지식여성의 형상이 관념화되어 있다는 비판도 받았으나, 소자산계급 지식인들이 혁명과 연애의 충돌 속에서 동요하고 좌절하는 모습과 혁명가의 열정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다음으로는 노동대중의 생활과 고통, 새로운 삶에 대한 열정을 반영한 <법망> <소식> <하루> <물> 등의 소설을 창작했다. 이중에서 <물>은 1931년에 발생한 대홍수를 배경으로 중국의 농민이 수재를 겪으면서 각성하고 봉건지주와 결연히 투쟁하리라는 각오를 다지는 모습을 그렸는데, 현실투쟁이라는 중대한 소재와 뛰어난 리얼리즘 기법을 활용하여 그녀의 성가를 높였다. 30년대 초 작가들이 아직 노동대중을 중시하지 않을 때, 의식적으로 노동대중의 생활과 투쟁을 표현하고 이러한 창작의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 그녀의 뛰어난 면이 있다. 셋째 시기는 1936년 섬서의 소비에트지역으로 들어간 때부터 49년까지의 시기이다. 정령은 홍군에 참가했다가 항일전쟁이 폭발하자 '서북전지복무단'에서 일을 하다가 1941년 <<해방일보>>의 문예잡지 편집을 맡아보았다. 이 시기에 그녀는 소비에트 지역의 부녀들이 항일전쟁 중에 겪는 비참한 운명과 열렬한 항일정신을 반영하는 <발사되지 않은 탄환 한발> <열여덟 사람> 등과 같은 작품을 창작했다. <내가 하촌에 있었을 때>는 일본군의 점령지였다가 후에는 국민당의 통치지역이 된 마을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맡은 부녀의 굳세고 책임감있는 성격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외에도 <병원에서>처럼 소비에트 지역에 존재하는 낙후된 정신상태를 반영하는 작품들도 창작했다. 1942년 그녀는 연안문예강화에 참석하고, 그후 <전보림(田保霖)> <기억 속에 살아 있네>와 같은 보고문학을 발표하기도 했다.
2. <<태양은 상건하를 비추네>>와 중국 토지혁명
1946년 여름 중국공산당은 토지개혁에 관한 '5.4지시'를 반포하였다. 정령은 이에 호응하여 하북에 있는 농촌에 직접 들어가 약 두 달에 걸쳐서 작업에 참가했다. 여기서 그녀는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농민들의 사상과 감정을 체험하였다. 그녀는 "나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함께 싸웠다. 나는 이들을 사랑했고 이러한 생활을 사랑했다. 나는 그들을 진실되게 종이에 남기고자 했다"고 창작동기를 말하고 있다. 그해 11월초에 창작에 돌입하였으나 47년에 두 차례 중단하고 다시 농촌에 들어가서 생활을 체험하였다. 원래 그녀의 구상은 투쟁, 토지분배, 군대참가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토지개혁을 보다 깊이있게 체험한 후 이러한 계획을 바꾸어 1948년 6월에야 <<태양은 상건하를 비추네>>를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51년 스탈린 문학상을 수상하여 그 성가를 더욱 높였다.
소설은 하북지역의 상건하 근처의 난수둔이라는 마을을 무대로 하여, 지주와 농민들간의 치열한 투쟁을 통하여 토지개혁의 험난하고 복잡다단한 경과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작품은 농민들과 악질지주 전문귀(錢文貴)와의 모순충돌을 전 줄거리를 관통하는 주축으로 삼고, 지주, 농민, 당 간부, 전쟁의 풍운 등을 서로 교차시켜 예술적 효과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음험하고 악랄한 전문귀는 자신의 마을이 곧 해방되리라는 것을 예측하고 자신이 멸망하는 것을 피하고자, 분가의 수법으로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빈농으로 낮추고 친척관계를 이용하여 치안대원을 자신을 변호하는 대변인으로 만들어 놓는다. 또한 어린 아들을 군대에 보내 자신이 항전가정에 속한다는 명분을 획득하고 집안의 노비를 시켜 농민회 주임과 애정관계를 맺게 하여 농민회를 마비시키고자 한다. 그는 토지개혁 공작대가 마을에 들어오자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군중들을 암암리에 위협하여 토지개혁운동을 저지한다. 이에 따라 복잡한 토지개혁운동은 더욱 얽히고 설키고 만다. 빈농과 고농은 전문귀와 투쟁하는 문제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일치하고 있으나, 전문귀의 농간에 말려 농민들의 사상적 각오와 인식수준은 각각 차이를 지니게 된다. 게다가 당 및 농민회 간부와 농민대중의 사이에도 지주를 처리하는 문제에 대하여 각각 다른 태도를 견지하게 됨에 따라 토지개혁 뿐만 아니라 투쟁대상 설정에도 많은 혼선과 갈들이 빚어진다. 그러나 농민들은 지주와의 반본적인 투쟁을 통해서 점차 눈앞의 이익과 장기적인 이익을 인식하게 되고, 악질지주 전문귀의 진면목을 깨닫게 된다. 투쟁이 관건에 처했을 때 선전부장이 마을에 와서 간부들과 당원의 사상을 통일시키고 지주를 역사의 심판대에 세움에 따라 끝내 투쟁은 승리를 거둔다.
정령은 이 작품을 통해서 계급관계와 사회관계를 생동적으로 묘사하면서 토지개혁운동의 곡절적인 발전양상과 승리하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정령은 "나는 장유민(마을의 공상당원으로 처음에는 이기적이고 타산적이며 걱정에 젖어 있었으나 투쟁 속에서 인식이 확고해지자 투쟁의 전열에 나서 대중과 간부들을 이끄는 주요인물)을 하나의 결점도 없는 영웅으로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 또한 정인(고농출신의 농민회 주임으로 전문귀의 질녀이자 노비생활을 하는 흑니와의 애정관계로 인하여 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고통에 빠져 있다가 사상투쟁을 거친 후 농민회를 이끄는 인물)을 뛰어난 농민회 주석으로 그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은 점차 뛰어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지 순식간에 영웅이 될 수는 없다"고 창작 인물에 대해 술회하고 있다. 소설에는 이외에도 강직하고 실질을 추구하는 민병대장, 떠들기보다는 구체적인 행동을 중시하는 합작사 주임, 상냥하고 단정한 부녀회 주임, 억세고 일 잘하는 양몰이꾼 처 등의 긍정적 인물들의 개성을 선명하게 부각시켰고, 교활하고 수다스러우면서 간계를 꾸미는 지주계급의 부인네들, 봉건세력들의 다양한 면모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인물들의 미묘하고 복잡한 심리를 해부하는 데에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정령은 "나는 습관적으로 소설을 쓰기 전에 반드시 그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에 대해 상세히 고찰을 하고 내 자신을 소설 속의 인물로 대체시켜 보아 그때에는 마땅히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를 상상해 본다. 소설 속의 모든 인물의 마음 속으로 기어들어가 그들을 대신해서 생각해 보고 거기서 어떤 심정이 나타나면 그때에 비로소 붓을 든다"고 자신의 창작태도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가 전문귀와 결전하기 전의 정인의 복잡한 심리활동이나 지주계급의 미묘하고 복잡한 내면을 묘사하는 데 커다란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작품의 취약점이라면 구성에 있어서 전반부가 너무나 급한 기세를 지니고 있는 데 반해 후반부로 갈수록 느슨해지고 산만하며 서술적인 언어의 사용이 많이 엿보인다는 것과 정면인물에 대한 묘사가 어떤 때에는 부정적 인물보다 개성이 명확하거나 선명하게 형상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은 상건하를 비추네>>는 정령의 대표작으로 그녀의 창작생애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일 뿐만 아니라, 중국현대문학사에 있어서 토지개혁운동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선명한 주제를 부각시킨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 자료출처 : 김하림 유중하 이주로 지음, <<중국현대문학의 이해>>(한길사, 1991), pp229~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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