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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국 당 대 문 학

1 9 4 9 년 이후 ~ 현재

민간예술의 공간 탐색 : ≪산촌의 대변혁≫

 

50년대 소설창작 중에서 농촌생활을 제재로 한 작품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매우 높다. 특히 1953년에 시작된 농촌의 대규모 사회주의 혁명인 합작화운동은 많은 작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합작화운동은 농민들에게 수천년간 지속된 소작식 경영방식을 포기하고 전통적인 사유관념에서 벗어나기를 요구했다. 토지개혁으로 토지를 얻어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꿈에 부풀기 시작한 대다수의 농민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야말로 뼈아픈 시련이었다.

농촌생활에 익숙하고 농민과 친숙한 작가들은 그로 인해 가혹한 정신적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정치상에 작가들은 모두 이 혁명의 의미를 이해하고 새로운 농촌에 대한 찬미를 통하여 혁명이 순조롭게 추진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농민들의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들의 사상 감정과 뼈아픈 시련을 체험하면서 그들과 운명을 함께하기를 바랬던 지식인들은 그들과 똑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농민에게 깊은 감정이 없었던 청년작가들은 중앙의 공문에 규정된 정책에 따라 이 운동을 도식적으로만 이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대대손손 농업에 종사해 온 농민들의 꿈을 단순히 "자본주의 노선을 쫓는 세력"으로 판단하고, 가볍게 "이 길을 가지 말라!"고 선포하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신중한 작가들은 시대적 주제와 고통에 빠진 농민들의 정신적 갈등 사이에서 표현 가능한 진실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바로 민간문화 형태라는 요소가 그 적절한 역량을 발휘하였다.

1955년 주립파는 고향으로 돌아가 생활하면서 장편소설 ≪산촌의 대변혁≫을 창작하였다.

주립파의 장편소설 ≪산촌의 대변혁(山鄕巨變)≫은 합작화운동을 묘사한 최초의 예술 작품도 아니고, 가장 깊은 이론성을 구비한 장편소설도 아니지만, 그것은 매우 선명한 예술적 개성을 가지고 있다. 즉, 자유스럽고 소박한 민간의 일상생활 속에서 준엄한 정치적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예술적 심미 공간을 개척하였다. 주립파는 30년대의 좌익문예운동에 참가하기도 하였고 외국문학에도 정통하였다. 그가 번역한 사라호프의 장편소설 ≪개간된 황무지(被開墾的處女地)≫와 지시의 보고문학집 ≪베일에 가려진 중국(秘密的中國)≫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문학작품이다. 연안문예좌담회 이후에 그는 문학을 포기하고 정치투쟁에 참가한 동시에 농촌으로 들어가 생활하면서 민간의 언어예술을 배웠다. 토지개혁을 제재로 삼은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 ≪폭풍취우(暴風驟雨)≫는 정령의 장편소설 ≪태양은 상건하에 비치다(太陽在桑乾河上)≫와 함께 스탈린문학상에서 2등상을 수상하였다.(1951년)

그러나 이 소설은 민간예술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표면적으로만 지방색과 방언을 갖추고 있어 작품 전체의 풍격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1955년에 그는 고향인 호남으로 이주하여 합작화운동 중인 농민의 의식구조를 깊이 연구하였다. 자기의 고향을 묘사하였기 때문인지 ≪산촌의 대변혁≫은 작가의 독특한 예술언어와 창작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으며, 이로써 동일 유형의 작품들 중에서 대단히 주목을 받게 되었다.

주립파는 시대적으로 공감하는 입장에 서서 농민의 합작화운동을 격려하였다. 농촌의 계급투쟁에 대한 구상을 포함하여 소설의 기본적인 구성과 인물 관계는 모두 중심 이데올로기와 일치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는 유청의 ≪창업사≫와도 어느 정도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유청은 농촌의 계급관계와 그 갈등구조에 대한 인식이 더 고차원적이었기 때문에 주립파보다는 훨씬 더 심후한 사상과 예리한 갈등구조를 표현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심후함과 예리함은 당시의 중심 이데올로기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며, ≪산촌의 대변혁≫은 바로 이 두 가지 측면에서 결점을 노출하고 있다. 주립파는 정치운동을 민간생활이라는 무대에서 연출하면서, 사상의 심후함을 피한 대신 순박하고 화목한 인정을 얻었고, 예리한 갈등구조의 표출을 피한 대신 현장감 넘치는 농민의 성격을 묘사하였던 것이다. 문학창작에 있어서 "민간 문화형태"는 완전한 모습을 갖춘 작품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민족형식"과 "민간언어"를 따로 떼어놓고 소설의 진정한 예술적 성과를 설명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소설을 창작하는 시간적 배경은 1955년 모택동이 등자회의 합작화 정리 축소 방침을 비판하고 합작화운동을 절정에 끌어올렸을 때인데, 이 시기에 대하여 많은 작가들은 "당내의 우경노선을 비판하는" 내용을 위주로 작품을 구성하였으며, ≪창업사≫도 이러한 영향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러나 70년대에 이르러 어떤 작가는 이 시기를 근거로 삼으면서 "당내의 주자파(走資派: 자본주의 노선을 걷는 실권파)"를 반대하는 ≪금광대도(金光大道)≫를 창작하였다. 주립파는 당연히 역사적 환경을 초월하여 중국공산당 고위층 사이의 내분을 판별할 수 없었기에, 그는 소설 속에서 당내의 우경적 오류를 묘사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농촌의 실제 상황에서 출발하여 본능적으로 이러한 "우경"이 바로 농민에게 필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소설 속의 청휘향(淸輝鄕) 당지부 서기 이월휘(李月輝)는 남자다운 기백이라곤 전혀 없는 인간이다. 그는 합작사(合作社) 정리 방침에 호응하여 하나뿐인 합작사를 축소시켰다. 결국 우경적 오류를 범했다고 지탄받았지만, 그는 매우 태연하게 이러한 이치를 굳게 믿고 있었다.

"사회주의는 훌륭한 길이며 기나긴 길이다. 중앙에서 15년을 정했였는데 급할게 뭐 있겠는가? 아직도 12년이나 남았는데. 여유가 있으면 좋은 일을 하게 되고 성미가 급하면 착오를 일으키게 되지."

 

다른 사람들이 그를 우경적이고 "전족한 여자(기회주의자를 비유함)" 같다고 비판했을 때도 그는 의기양양하게 반박하였다.

"나는 단지 기백이 귀찮을 뿐인데, 전족한 여자는 사람도 아니란 말이냐? 기백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람?"

 

작가는 당시의 반우경 노선을 조심스럽게 선전하였으며, 이러한 이론을 통하여 "그다지 높지 않은" 농촌 말단 간부들이 자세하게 말하는 소리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월휘와 합작사 사장 유우생(劉雨生)은 모두 소설 속의 주요 농촌간부이자 합작화운동의 지도자이지만, 그들은 같은 유형의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영웅적인 모습이 없는 평범한 촌놈들이다. 이월휘는 "내가 가장 두려운 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 대중이 없이는 업무를 추진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트럼프를 할 때도 사람이 없으면 나 혼자 쳤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를 좋아하였으며, "나는 해방 전에는 놈팽이었고 해방 후에야 성공을 이루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는 몰락한 집안 출신으로 공부도 하고 장사도 하다가 뒤에는 간부가 되었다. 따라서 그는 농삿일은 잘 몰랐지만 대인관계와 인정만으로 농민의 신임을 얻었다. 이것은 농촌 말단 간부의 실상과 그대로 부합한다. 그리고 유우생은.자신의 업무에 충실하느라 집안일을 잊었으며, 그로 인해 본처에게 강제 이혼 당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마음씨는 항상 순박하고 선량하였다. 이 두 말단 간부의 본모습과 풍부한 인정미로 인해 합작화운동 중의 좌경 맹종과 농민의 감정에 피해를 주는 정책과 방법(구위원회 서기 朱明을 대표로 함)은 희석되었다. 그들은 국가의 의지와 민간의 생활 사이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였다.

주립파에 의해 묘사된 농촌의 말단 간부 형상이 실제 생활의 본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는 농촌의 "놈팽이"가 간부가 되는 것은 물론, 농민을 유린하고 상급자의 비위를 맞추면서 민정을 돌아보지 않은 사례도 매우 많았다. 이러한 점은 민간에 깊은 뿌리를 둔 조수리의 작품에서 더욱 심각하고 예리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주립파는 시대적 주제를 반영하는 입장에 선 지식인으로서 "고대전(高大全)"과 같은 신형 농민이나 영웅이 아닌 이월휘와 유우생과 같은 간부 형상을 소조하였다. 이것은 자유로운 민간문화 형태에 대한 그의 존중을 표현한 것으로, 여기에는 선량하고 너그러우며 천진한 작가의 아름다운 성품이 반영되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망에서 나왔으므로 소설 속에는 긴장된 계층간의 대립(억지로 덧붙인 子元 부부 등의 "계층간의 적" 이야기는 흠이 많아 제외함)이 없고, 성우정(盛佑亭), 진선진(陳先晋), 왕국생(王菊生) 등 늙은 농민형상은 매우 생동감있게 묘사되었다. 작가는 먼저 노동의 입장에서 이러한 농민의 우수한 성품을 찬미하였다. 그들은 대부분 엄청한 노력으로 황무지를 개간하고 몇 대에 걸친 피땀과 목숨을 바쳐 조그만 땅을 막 얻었는데, 정부에서 갑자기 논밭과 산림, 가축을 모두 합작사에 귀속시키려고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당연히 정신적인 갈등과 고통에 실달려야 했다. 작가는 정치적 입장에서 이러한 정신적 갈등의 비참함을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인격적인 면에서는 그들을 추악하게 묘사하여 모욕을 안겨주었으며, 민간적 측면에서는 그들의 순박한 인정미를 묘사하고 선량한 마음씨를 동정하였다. 그후 이론계에서는 이 농민의 예술 형상을 "중간인물"이라 칭하였는데, 사실 일방적이고 과대한 계급투쟁의 시대에는 문학창작에 이러한 "중간인물"이 있어야 비로소 민간의 진실된 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인정미와 향토미, 자연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으며, 그 속에 심종문 필하의 호남 농촌사회의 참모습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민간전설과 시골풍속, 자연풍경이 줄거리 속에 적절하게 삽입하여 합작화라는 정치적 주제만을 나타내지 않고 소설의 의경(意境)을 확대하였다. 소설의 제1장에서는 현의 업무추진팀이 산촌으로 들어가 합작화운동을 추진하는 것을 묘사하였는데, 여성간부가 작은 배를 타고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서 산촌으로 들어가는 모습에는 외부의 정치적 회오리가 조용한 시골사회에 불어닥칠 것이라는 복선이 깔려있다. 그러나 소설은 여러 곳에서 정치와 향토의 정을 번갈아 묘사하여 더욱 아름답고 독특한 장면을 연출했다. 애인과 열애에 빠진 부드러운 마음씨를 가진 뚱보 아가씨 성숙군(盛淑君), 질투심 때문에 남편과 크게 싸워 남편은 독약을 먹고 자살하지만 여전히 성질을 마구 부리는 계만(桂滿) 아가씨,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에 자기의 이해득실만 따지다가 새로운 애인이 생긴 후에는 다시 온순하고 자상해진 성가수(盛佳秀) 등의 갖가지 형상에는 농촌의 다양한 생활상이 나타나 있을 뿐, 합작화운동에 대한 중개역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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