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verside_home.gif Home  l  Site Map  l 사이트소개 l  추천사이트 l

 

 

 

 

 

 

 

 

 

 

 

 

 

 

 

 

 

 

 

 

 

 

 

 

 

 

 

 

 

 

 

 

 

 

 

 

 

 

 

 

 

 

 

 

 

 

 

 

 

 

 

 

 

 

 

 

 

 

 

 

 

 

 

 

 

 

 

 

 

 

 

 

 

 

 

 

 

 

 

 

 

 

 

 

 

 

 

 

 

 

 

 

 

 

 

 

 

 

 

 

 

 

 

 

 

 

 

 

 

 

 

 

 

중 국 당 대 문 학

1 9 4 9 년 이후 ~ 현재

승리자의 정치 서정 : <시간은 시작되었다>

 

50년대 초기는 옛날의 문화 규범이 새로운 형세와 문화 규범에 적응하지 못한 신구 교체시기로, 이론상의 비평과 자아비판은 시대적 풍조가 된 반면 문학창작은 상대적으로 적막하였다. 이는 표면적으로 기세등등해 보였던 시대적 상황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문단을 주도한 창작이란 승리자의 정치 서정시뿐이었다. 새로운 역사적 환경 속에서 정치 서정시의 내용은 주로 새정권과 그 지도자에 대한 직접적인 찬송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5.4" 신문학 전통 속에는 보이지 않는 요소이다. 대체로 항전을 거치면서 일부 시인들이 재난에 처한 조국을 찬송하거나, 나아가서 항일 민주근거지에서 지방정권과 그 지도자에 대한 찬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애청(艾靑)이나 서지(徐遲) 등과 같이 찬송을 제재로 한 시를 시험적으로 창작한 시인들도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50년대 이후 "새로운 인민시대에 맞는 제재와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서, 찬양가는 시가창작의 보편적인 양식으로 거듭 발전하였다. 내용상에서 그것은 서로 연관성이 있는 두 가지 형태로 표현되었는데, 하나는 시대(인민혁명의 시대와 사회주의 건설의 시대)와 그 주인공(노동자 농민 군인)에 대한 찬송이고, 다른 하나는 신중국의 창조자와 지도자(중국공산당과 그 지도자)에 대한 찬송이었다." "찬양가" 형식은 50∼60년대 정치 서정시의 주류를 형성한 이후 문화대혁명 시기까지 발전하여, 지도자에 대한 찬미가 절정에 달하고, 찬송의 구성 방식도 날로 형식화되어 갔다.

50년대 초기에 "찬양가"가 일종의 새로운 주제 양식이 되자, "5.4" 신문학 계몽 전통 속에서 성장한 지식인들은 그에 상응하는 언어를 표현할 능력이 부족하였다. 가장 전형적인 예로 "5.4" 시기의 저명한 시인이자 자유시의 창시자인 곽말약(郭沫若)은 고전 사부(詞賦)의 형식으로써 새정권을 찬송하는 <신화송(新華頌)>을 썼으며, 유아자(柳亞子) 등과 같이 문언시를 본떠서 지은 화답시도 한때를 풍미했다. 자유시 형식으로 지은 찬양가는 그 수량은 많아도 공허한 서정이나 개념적인 서사로 흐른 조잡한 경향이 적지 않았다. 결국 시인의 속마음을 털어놓기에 급급한 나머지 언어적으로도 남발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산문식이나 구호식, 심지어 어록식(語錄式)의 서사구도 도처에 늘려있었다. 그것은 일반 서정시의 규율과 리듬을 깨뜨리고 거창한 서사로써 방만한 시가형식을 새롭게 창조하였다. 그리고 시인의 주관적인 감정인 자유와 해방이 "찬양가"체의 영웅숭배 심리와 기묘하게 혼합되는 모순도 나타났다. 이렇게 하여 그것은 하나의 특정한 시대의 시가 특색을 구성하였던 것이다.

1949년 봄 호풍은 북경화문학교(北京華文學校)에 다니고 있었다. 이해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그는 대형 교향악식 장시 <시간은 시작되었다>를 창작하였다.

이러한 정치 서정시의 풍격이 남김없이 드러난 작품은 1949년말에서 1951년 초에 호풍이 창작한 대형 교향악식의 장시 <시간은 시작되었다(時間開始了)>이다. 이 시는 모두 5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환락송(歡樂頌)>에서는 1949년 9월의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막을 도입부로 삼고 회의장의 열기와 모택동의 형상을 매우 과장적으로 묘사하였다.

제2부 <광영송(光榮頌)>에서는 중국 여성 근로자들의 고난에 찬 역사와 시대적 감화로 힘차게 일어나 반항하는 그녀들의 영광스런 전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였다.

제3부 <청춘곡(靑春曲)>에서는 시인이 주관적인 서정을 감성적인 형상으로 전환하여, 애기풀, 아침햇살, 눈송이, 대지, 햇빛 등 새로운 사물의 청춘에 대한 순수하고 진실한 감격을 가득 표현하였다. 이것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서정시이지만 애석하게도 시인은 당시에 전체를 완성하지 못하였다.

제4부 <안혼곡(安魂曲)>에서는 천안문광장(天安門廣場)에서 거행된 인민영웅기념비(人民英雄紀念碑)의 준공식을 시작으로 낭만적인 상상력을 펼쳐, 시인이 알고 지내던 몇몇 선열들의 영령과 영혼의 대화를 전개하면서, 선열들의 생활상과 참된 영혼을 매우 감동적이고 진지하게 묘사하였다.

제5부 <또 하나의 환락송(又一個歡樂頌)>에서는 건국식의 경축 장면으로 돌아왔다.

모두 3천여 행으로 구성된 이 시는 환락으로 시작하여 환락으로 끝맺고 있다. 그 속에는 정치협상회의와 기념비의 준공, 건국식이라는 세 개의 역사적 시간이 관통하고 있으며, 혁명과 이상을 추구하는 시인의 인생행로가 깃들어 있다. 이 시는 구성상에서 방대한 정치 서정체 시와 엄숙한 서사체 시, 경쾌한 서정체 소시를 세심하게 혼용하여, 웅장하면서도 시원하게 환락시대의 마음의 영혼을 전달하고 있다.

이 정치 서정시는 새정권에 대한 환호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표현한 것이 이러한 형태이지만) 이것을 창작할 때 호풍의 심정은 비교적 복잡하였다. 당시 호풍의 문예이론은 이미 중국공산당의 계획적인 지시에 의해, "자기의 소부르조아 관점으로써 프롤레타리아 문예사상의 기본 원칙과 방침을 곡해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제1차 전국문학예술가 대표대회에서 모순이 그에게 비판한 내용을 보면, 그는 이론적인 면에서 자신을 효과적으로 변호하기 어려웠던 것같다.(그는 줄곧 이렇게 하려고 시도하였지만) 따라서 당시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창작을 통하여 그의 이론이 새로운 정권의 건설에 유익하다는 것과 지식인의 "주관적인 전투정신"이 새로운 정권의 요구에 부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시간은 시작되었다>는 바로 이러한 노력의 결정체였다. 그는 과장된 열정으로 모택동과 공산당의 혁명을 찬양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자신의 이론과 시대의 동일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호풍이 모택동에게 품었던 친근감과 존경심은 진실된 것이었다. 특히 1938년에 그가 <모택동이 노신을 논함(毛澤東論魯迅)>이란 글을 최초로 발표한 이후부터 그의 마음속은 줄곧 지기(知己)를 만난 듯한 느낌으로 가득하였다. 이러한 두 가지 감정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그는 충만한 격정을 소리 높여 노래하였던 것이다.

 

바다

들끓고 있다

그것은 최고봉에서 용솟음치고 있다

모택동

그는 그 최고봉에 우뚝 서 있다

그는 몸을 살짝 구부린 듯하고

그의 오른손은 주먹을 꽉 쥐고 앞에 놓은 듯하며

그의 두 발은 거대한 무형의 방향키를 밟고 있는 듯하고

그는 이곳을 흘러가는 온갖 강줄기를 응시하고 있는 듯하다

 

시어 속에 개인적인 친근감을 기탁하여 모택동을 역사적 위인의 정상에 올려놓았다. 이것이 바로 호풍 시가이론의 핵심이다. 즉, 시인의 목소리는 시대 정신의 발효이고, 시인의 정서의 꽃은 인민의 정서의 꽃이며, 시인의 거대한 감정 요소는 반드시 시대적 정신과 긴밀하게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시작되었다>에서 더욱 성공적인 부분은 시인이 상당히 개인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시인과 몇몇 선열들 사이의 친밀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다. "개인적인 언어"란 시에서 서정의 주체가 매우 구체적인 시인의 자화상이라는 것과, 어떤 방대한 공통적인 시대의 목소리가 융합되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후자는 전자의 진실을 통하여 표현되는 것이지 개념화된 느낌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서사적 특징은 제4부 <안혼곡>에 더욱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은 선열들에게 있었던 의기소침했던 시절과 여러 가지 성격적 결함들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특히 혁명작가 구동평(丘東平)의 시체(詩體)에 대하여 서술할 때는 유혈이 낭자한 모습을 솔직하게 묘사하였다. 이것은 작가에게 인물의 고통스런 투쟁 과정을 묘사하도록 요구한 시인의 일관된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칠월파(七月派) 시인 녹원(綠原)은 일찍이 이 시를 평하면서, "당시에 인민공화국을 찬양한 시는 적지 않았지만, 시야의 높이, 의미의 깊이, 감정의 농도, 표현의 힘 등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시간은 시작되었다>와 견줄만한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극찬했다. <시간이 시작되었다>를 같은 유형의 정치 서정시 창작 속에 놓고 살펴보면 이러한 평가가 정확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는 찬송을 특징으로 하는 정치 서정시의 많은 요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특히 강렬한 서정 주체의 형상화는 하경지(賀敬之), 곽소천(郭小川), 문첩(聞捷) 등 50년대 중요 정치 서정시인들이 도달할 수 없는 독창적인 영역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모든 "찬양가"체의 정치 서정시에는 많은 결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세련되지 않은 시어와 "찬양가"체의 격식화, 무절제한 주관 감정의 토로, 지도자에 대한 열광적인 숭배 경향 등은 이 작품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결점들이다. 그리고 리듬과 미감이 없는 장황하고 중복된 구성에 있어서는, 하나의 "환락송(歡樂頌)" 뒤에 다시 하나의 "환락송"이 오거나, 정치협상회의를 묘사하는 중간에 다시 당원대회를 삽입하고, 현장 기록식으로 인물을 서술할 때에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자연주의 태도를 취하는 것 등을 그 결점으로 들 수 있다.

 

 

◈ ◈ ◈ 현재 페이지는 [당대문학]-[승리자의 정치 서정] 입니다. ◈ ◈ ◈

당대문학의 원류당대문학의 시기구분5.4 신문학전통의 변모승리자의 정치 서정시대와의 합일점잠재 창작의 시작민간문예 형태와 농촌제재 창작민간예술의 공간 탐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