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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국 현 대 문 학

진독수의 문학혁명론

 

 

진독수(陳獨秀) 1917년 2월 1일 ≪신청년(新靑年)≫ 2권 6호

 

오늘날의 장엄하고 찬란한 유럽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은 혁명의 산물이라 하겠다. 유럽에서 말하는 혁명이란 "옛것을 개혁하여 새롭게 바꾼다(革故更新)"는 뜻으로 중국에서 말하는 왕조의 변혁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따라서 문예부흥 이래 정치계의 혁명이 있었고, 종교계와 윤리도덕, 문학예술에도 혁명이 있었으니, 혁명을 통하지 않고 새롭게 일어나거나 진화한 것은 없었다. 근대 유럽의 문명사는 그야말로 혁명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장엄하고 찬란한 유럽은 바로 혁명의 소산이라 하겠다.

 

구차하게 일시적인 안일을 취하는 어리석고 유약한 우리 국민들은 혁명을 독충처럼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정치계에 세 번의 혁명이 있었음에도 아직 어둠은 조금도 걷히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의 일부는 세 번의 정치혁명이 모두 용두사미로 끝나 선혈로써 낡고 더러운 것들을 깨끗이 씻어낼 수 없었던 데 있지만, 원인의 대부분은 우리의 정신계에 깊이 뿌리박힌 윤리, 도덕, 문학, 예술 등의 분야에서 검은 장막을 펼치고 더러운 찌꺼기들을 깊이 쌓아둔 채 이 용두사미의 혁명조차 없었다는 데 있다. 이것이 정치혁명만으로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아무런 효과도 거둘 수 없었던 이유이다. 그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면 바로 우리 스스로 혁명을 증오하고 그것이 문명을 개발시키는 이기(利器)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유교(儒敎) 문제로 떠들썩한데, 이것은 윤리도덕혁명의 서곡이다. 문학혁명의 기운이 하루 이틀 배양되어 온 것은 아니지만, 그 기치를 처음으로 든 선구자는 바로 내 친구 호적(胡適)이다. 나는 전국의 고루한 학자들의 적이 될 것을 무릅쓰고 "문학혁명군"의 큰 깃발을 높이 펼쳐 내 친구를 성원하고자 한다. 그 깃발 위에 우리 혁명군의 삼대주의(三大主義)를 대서특필한다.

첫째, 수식하고 아부하는 귀족문학을 타도하고 평이하고 서정적인 국민문학을 건설하자.

둘째, 진부하고 과장적인 고전문학을 타도하고 신선하고 진실된 사실문학(寫實文學)을 건설하자.

셋째, 애매하고 난해한 산림문학을 타도하고 명료하고 통속적인 사회문학을 건설하고자.

 

≪시경≫ 국풍(國風)에는 속된 말들이 많고, 초사(楚辭)는 토속적인 말과 지방의 사물들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모두가 훌륭하다. 양한(兩漢)의 부(賦) 작가들이 그 흐름을 이어받았지만 송양(頌揚)하는 글들이 크게 유행하여 수식적이고 아부적이었으며, 문사(文辭)는 많되 의미는 적었다. 이것이 귀족문학, 고전문학의 시작이었다. 위진(魏晋) 이래의 오언시(五言詩)는 서정과 서사로써 전대의 판에 박힌 미사려구의 기풍을 일변시켰다. 당시에 있어서 이는 문학의 일대혁명, 즉 문학의 일대진화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상함에 기탁하려 하고, 말은 간단해도 뜻이 난해하였으며, 사회현상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이는 귀족의 기풍과 다르지 않으니 통속적인 국민문학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제량(齊梁) 이후로는 대우(對偶)를 숭상하는 기풍이 성행하여 당(唐)에 이르자 율시체(律詩體)가 되었다. 한편 운(韻)이 없는 문장에도 대우를 숭상하였으니, ≪서경(書經)≫과 ≪주역(周易)≫ 이래의 문장들이 모두 그러했던 것이다.(고인들은 글을 쓸 때 대우를 숭상했을 뿐만 아니라 운도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에, 騈文家들은 騈體가 중국문장의 정통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나의 죽은 친구 王기生이 바로 이러한 설을 주장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는 옛글이 옮겨적기에 쉽지 않아 傳誦에 편리하도록 운과 대우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후세의 작자들이 어찌 여기에 구애받았겠는가?)

 

동진(東晋) 이후에는 사소한 일의 진술에도 변려문(騈驪文)을 숭상하였으며, 그것이 당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변체(騈體)가 되었다. 율시와 변려문은 모두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시작되어 당대에 크게 성행하였으며, 그것은 더 나아가서 배율(排律)과 사륙문(四六文)이 되었다. 이러한 수식적이고 아부적이며 과장적이고 공허한 귀족 고전문학은 그 재능을 극도로 발휘였지만, 결국은 연지와 분을 발라놓은 아름다운 인형과 같을 뿐이었다. 팔고시첩(八股詩帖: 팔고문은 본래 명청대 과거시험의 문체이나 그 근원이 당대의 詩帖에 있으므로, 여기서는 당대 과거시험 볼 때의 對偶性의 특수한 문장형식으로 보면 될 것이다.)의 가치로써도 별로 높지 않으니 가히 문학의 종말이라 하겠다! 한유와 유종원이 일어나서 섬세하고 교묘한 기교를 부리는 전인들의 기풍을 일소하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니, 남북조의 귀족 고전문학이 송원(宋元)의 국민 통속문학으로 변하는 과도기가 열리게 되었다. 한유, 유종원, 원진(元), 백거이(白居易) 등이 시대적 기풍에 순응하여 그 중추가 되었다. 세상사람들은 한유의 문장이 팔대(八代: 後漢, 魏, 晋, 宋, 齊, 梁, 陳, 隋의 8대)의 쇠미함을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비록 이것이 정확한 이론은 아닐지라도, 그가 팔대의 법을 변화시켜 송원대의 앞길을 열었으니 문예계의 호걸임엔 틀림없다. 오늘날 우리가 한유에게 불만을 갖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글을 지을 때 여전히 옛 글을 본받았다. 비록 전아한 문장은 아니었지만, 귀족적인 풍격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내용적으로는 당대(唐代) 소설가들의 풍부함에 훨씬 미치지 못함으로써 결국 하나의 새로운 귀족문학을 조성하였다.

둘째, "문이재도(文以載道: 문장은 도를 싣는 것이다)"의 오류에 빠졌다. 문학은 본래 도를 싣기 위해서 마련된 것이 아닌데도, 한유로부터 증국번(曾國藩)에 이르는 "재도(載道)"의 문장이란 공맹(孔孟) 이래의 지극히 천박하고 공허한 겉치레 말들을 베껴놓은 것에 불과하다. 나는 일찍이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문장에서 말하는 '문이재도'가 바로 명청의 팔고가(八股家)들이 말하는 '대성입언(代聖立言: 성현을 대신하여 이론을 세우다)'과 동일한 의미라고 말한 바 있다.

 

이상의 두 가지 사실로 미루어보면, 한유의 고문운동은 시대적 산물로 문학사적으로는 그 자체에 아무런 특색도 없다. 원명(元明)의 극본(劇本)과 명청(明淸)의 소설은 근대문학 중에서 훌륭한 것들이지만, 애석하게도 요마(妖魔)들의 방해로 태(胎)에서 나오기 전에 유산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현재에 이르러 중국문학은 자질구레하고도 진부해 유럽과는 견줄 수도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 요마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명대의 전후칠자(前後七子: 명대에 전후 두 차례에 걸쳐 고문을 본받을 것을 주장한 前七子와 後七子)와 팔가문파(八家文派: 당송팔대가의 문장을 본받자는 파)의 귀유광(歸有光), 방포(方苞), 유대괴(劉大괴, 괴=木+魁), 요내(姚내, 내=乃+鼎) 등이다. 이 18요마(十八妖魔)들은 옛것을 존숭하고 현재의 것을 멸시하면서, 어려운 문구나 들고 나오며 문단을 제패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당대에서도 뛰어난 마치원(馬致遠: 원대의 잡극가), 시내암(施耐庵: ≪水湖傳≫을 쓴 명대 초기의 작가), 조설근(曹雪芹: ≪紅樓夢≫을 쓴 청대의 작가) 등과 같은 문호의 이름은 거의 알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명대 칠자(七子)들의 시는 심력을 다해 옛것을 모방하였으니, 그것을 일러 베꼈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귀유광, 방포, 유대괴, 요내의 문장은 영예를 희구하거나, 아니면 병이 없는 데도 신음하며, 온 종이를 "지(之), 호(乎), 자(者), 야(也), 의(矣), 언(焉), 재(哉)"(고문에 자주 쓰이는 감탄사 등의 허사를 가리킴) 등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또한 장편대작(長篇大作)마다 득의양양하게 이것저것 장황하게 말하였지만,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문학에는 작자의 창조적인 재능도 없고 가슴 속에 아무것도 품은 게 없으니, 그들의 기량은 단지 옛것을 모방하고 남을 속이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이들이 쓴 이런 저작들은 한 글자도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비록 그들의 저작이 몸값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당시 사회문명의 진화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문학은 전대의 폐해를 죄다 이어받고 있다. "동성파(桐城派: 청대의 고문 숭상파)"란 팔가(八家)와 팔고(八股)의 혼합체이고, "변체문(騈體文)"이란 사기당(思綺堂: 청대의 변문가 章藻功의 호)과 수원(隨圓: 청대의 번문가 袁枚의 호)의 사륙문(四六文)이며, "서강파(西江派)"란 산곡(山谷: 송대 江西詩派의 主宗인 黃庭堅의 호)을 우상으로 삼고 있다. 고인(古人)을 안중에 두지 아니하고 적나라하게 스스로의 감정을 서술하고 세상의 일들을 쓰는 이른바 시대를 대표하는 문호는 전국 어디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온세상을 다 둘러봐도 이런 발상조차 없다. 문학적인 문장은 볼 만하지 못하고, 응용적인 문장은 더욱 괴탄스럽다. 즉, 비명(碑名)이나 묘지(墓志)는 극찬만 일삼아 독자들이 믿지 않는데도 작가는 관례대로 그것을 지어야만 한다. 또한 일상적인 공고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부하는 말 뿐이고, 상(喪)을 치르는 자는 호화호식하고 있으면서도 부고 뒤에는 남을 속여 "거적대기를 깔고 흙뭉치를 베고 마음이 혼미해 있습니다.(점塊昏彌, 점= 초두+占)"라고 쓴다. 뿐만 아니라 의사에게 액자를 줄 때 "의술이 岐伯과 黃帝를 만난 것같이 고명하다(術邁岐黃)"라고 쓰지 않고, "손을 댔다 하면 바로 낫는다.(着手成春)"라고 쓰며, 궁벽한 시골의 아주 조그만 두부가게에도 기둥에 붙이는 대련(對聯)에는 항상 "장사는 흥성해서 온세계로 통하고, 재원은 무성해서 온중국에 통하리라.(生意興隆通四海, 財源茂盛達三江)"라고 쓴다. 이렇게 국민들의 응용문학이 누추해진 것은 모두 아부적이고 허위적이며 과장적인 귀족 고전문학에서 온 것이다.

 

이 문학혁신의 시대를 맞이하여 귀족문학, 고전문학, 산림문학에 속하는 것들은 모두 배척 대상이다. 무슨 이유로 이 세 가지 문학을 배척하는가? 귀족문학은 미사여구에 의존하여 독립자존의 기상을 잃었고, 고전문학은 과장적이고 진부하여 서정 서사의 취지를 상실하였으며, 산림문학은 애매하고 난해하여 자신은 명산(名山)을 저술한 것이라 여겨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그 형식은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여, 살은 있으되 뼈가 없고 형체는 있으되 정신이 없으니, 그것은 장식품일 뿐 실용품은 아니다. 그 내용은 제왕, 귀족, 권문세가, 신선, 요괴 및 개인적인 이익과 영달의 범위를 넘지 못하였다. 이른바 우주나 인생, 사회는 모두 그것들의 구상(構想)이 미칠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세 가지 문학의 공통적인 결점이다. 이러한 문학은 대체로 아부적이고 과장적이며 허위적이고 우매한 우리 국민성과 인과관계를 이루고 있다. 지금 정치를 혁신하려면 반드시 이 정치를 운용하는 정신계에 뿌리박고 있는 문학을 혁신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계의 문학 추세와 시대 정신을 보지 못하고, 밤낮으로 옛 종이 더미 속에 머리를 파묻은 채 제왕이나 권문세가, 요괴, 신선, 개인의 이익과 영달에만 시선을 집중하여, 이것으로써 문학을 혁신하고 정치를 혁신하고자 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손발을 묶어놓고 맹분(孟賁: 전국시대에 용기로 이름난 무사) 같은 자를 대적하는 꼴이다.

 

유럽의 문화는 정치와 과학에서 받은 영향이 많긴 하지만, 문학에서 받은 영향도 적지 않다. 나는 루소와 파스칼의 프랑스를 사랑하나 위고와 졸라의 프랑스를 더욱 사랑한다. 칸트와 헤겔의 독일을 사랑하나 괴테와 호프만의 독일을 더욱 사랑한다. 베이컨과 다아윈의 영국을 사랑하나 디킨스와 와일드의 영국을 더욱 사랑한다. 우리나라 문학계의 호걸로서 중국의 위고, 졸라, 괴테, 호프만, 디킨스, 와일드를 자부할 자는 없는가? 진부한 유학자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대담하게 18요마(十八妖魔)와 맞서 싸움을 펼칠 자는 없는가? 나는 42㎝ 대포를 끌고 그를 위한 선구자가 되길 바란다!

 

 

<원문>

今日庄严灿烂之欧洲,何自而来乎?曰,革命之赐也。欧语所谓革命者,为革故更新之义,与中土所谓朝代鼎革,绝不相类;故自文艺复兴以来,政治界有革命,宗教界亦有革命,伦理道德亦有革命,文学艺术亦莫不有革命,莫不因革命而新兴、而进化。近代欧洲文明史,直可谓之革命史。故曰,今日庄严灿烂之欧洲,乃革命之赐也。

 

吾苟偷庸懦之国民,畏革命如蛇蝎,故政治界虽经三次革命,而黑暗未尝稍减。其原因之小部分,则为三次革命,皆虎头蛇尾,未能充分以鲜血洗净旧(氵于);其大部分,则为盘踞吾人精神界根深底固之伦理、道德、文学、艺术诸端,莫不黑幕层张,垢污深积,并此虎头蛇尾之革命而未有焉。此单独政治革命所以于吾之社会,不生若何变化,不收若何效果也。推其总因,乃在吾人疾视革命,不知其为开发文明之利器故。

 

孔教问题,方喧呶于国中,此伦理道德革命之先声也。文学革命之气运,酝酿已非一日,其首举义旗之急先锋,则为吾友胡适。余甘冒全国学究之敌,高张“文学革命军”大旗,以为吾友之声援。旗上大书特书吾革命军三大主义:曰,推倒雕琢的、阿谀的贵族文学,建设平易的、抒情的国民文学;曰,推倒陈腐的、铺张的古典文学,建设新鲜的、立诚的写实文学;曰,推倒迂晦的、艰涩的山林文学,建设明了的、通俗的社会文学。

 

“国风”多里巷猥辞,“楚辞”盛用土语方物,非不斐然可观。承其流者,两汉赋家,颂声大作,雕琢阿谀,词多而意寡,此贵族之文、古典之文之始作俑也。魏、晋以下之五言,抒情写事,一变前代板滞堆砌之风,在当时可谓为文学一大革命,即文学一大进化;然希托高古,言简意晦,社会现象,非所取材,是犹贵族之风,未足以语通俗的国民文学也。齐、梁以来,风尚对偶,演至有唐,遂成律体。无韵之文,亦尚对偶。“尚书”、“周易”以来,即是如此。(古人行文,不但风尚对偶,且多韵语,故骈文家颇主张骈体为中国文章正宗之说。〔亡友王■生即主张此说之一人。〕不知古书传钞不易,韵与对偶,以利传诵而已。后之作者,乌可泥此?)

 

东晋而后,即细事陈启,亦尚骈丽。演至有唐,遂成骈体。诗之有律,文之有骈,皆发源于南北朝,大成于唐代。更进而为排律,为四六。此等雕琢的、阿谀的、铺张的、空泛的贵族古典文学,极其长技,不过如涂脂抹粉之泥塑美人,以视八股试帖之价值,未必能高几何,可谓为文学之末运矣!韩、柳崛起,一洗前人纤巧堆朵之习,风会所趋,乃南北朝贵族古典文学,变而为宋、元国民通俗文学之过渡时代。韩、柳、元、白,应运而出,为之中枢。俗论谓昌黎文章起八代之衰,虽非确论,然变八代之法,开宋、元之先,自是文界豪杰之士。吾人今日所不满于昌黎者二事:

一曰,文犹师古。虽非典文,然不脱贵族气派,寻其内容,远不若唐代诸小说家之丰富,其结果乃造成一新贵族文学。

二曰,误于“文以载道”之谬见。文学本非为载道而设,而自昌黎以讫曾国藩所谓载道之文,不过钞袭孔、孟以来极肤浅极空泛之门面语而已。余尝谓唐、宋八家文之所谓“文以载道”,直与八股家之所谓“代圣贤立言”,同一鼻孔出气。

 

以此二事推之,昌黎之变古,乃时代使然,于文学史上,其自身并无十分特色可观也。元、明剧本,明、清小说,乃近代文学之粲然可观者,惜为妖魔所厄,未及出胎,竟尔流产,以至今日中国之文学,委琐陈腐,远不能与欧洲比肩。此妖魔为何?即明之前后七子及八家文派之归、方、刘、姚是也。此十八妖魔辈,尊古蔑今,咬文嚼字,称霸文坛,反使盖代文豪若马东篱,若施耐庵,若曹雪芹诸人之姓名,儿不为国人所识。若夫七子之诗,刻意模古,直谓之抄袭可也。归、方、刘、姚之文,或希荣誉墓,或无病而呻,满纸之乎者也矣焉哉。每有长篇大作,摇头摆尾,说来说去,不知道说些甚么。此等文学,作者既非创造才,胸中又无物,其伎俩惟在仿古欺人,直无一字有存在之价值,虽著作等身,与其时之社会文明进化无丝毫关系。

 

今日吾国文学,悉承前代之敝,所谓“桐城派”者,八家与八股之混合体也;所谓“骈体文”者,思绮堂与随园之四六也;所谓“西江派”者,山谷之偶象也。求夫目无古人,赤裸裸的抒情写世,所谓代表时代之文豪者,不独全国无其人,而且举世无此想。文学之文,既不足观,应用之友,益复怪诞:碑铭墓志,极量称扬,读者决不见信,作者必照例为之;寻常启事,首尾恒有种种谀词;居丧者即华居美食,而哀启必欺人曰“苫块昏迷”;赠医生以匾额,不曰“术迈岐黄”,即曰“著手成春”;穷乡僻壤极小之豆腐店,其春联恒作“生意兴隆通四海,财源茂盛达三江”;此等国民应用之文学之丑陋,皆阿谀的、虚伪的、铺张的贵族古典文学阶之厉耳。

 

际兹文学革新之时代,凡属贵族文学、古典文学、山林文学,均在排斥之列。以何理由而排斥此三种文学耶?曰,贵族文学,藻饰依他,失独立自尊之气象也;古典文学,铺张堆砌,失抒情写实之旨也;山林文学,深晦艰涩,自以为名山著述,于其群之大多数无所裨益也。其形体则陈陈相因,有肉无骨,有形无神,乃装饰品而非实用品;其内容则目光不越帝王权贵,神仙鬼怪,及其个人之穷通利达。所谓宇宙,所谓人生,所谓社会,举非其构思所及,此三种文学公同之缺点也。此种文学,盖与吾阿谀、夸张、虚伪、迂阔之国民性互为因果。今欲革新政治,势不得不革新盘踞于运用此政治者精神界之文学。使吾人不张目以观世界社会文学之趋势,及时代之精神,日夜埋头故纸堆中,所目注心营者,不越帝王、权贵、鬼怪、神仙与夫个人之穷通利达,以此而求革新文学,革新政治,是缚手足而敌孟贲也。

 

欧洲文化,受赐于政治科学者固多,受赐于文学者亦不少。予爱卢梭、巴士特之法兰西,予尤爱虞哥、左喇之法兰西;予爱康德、赫克尔之德意志,予尤爱桂特郝、卜特曼之德意志;予爱倍根、达尔文之英吉利,予尤爱狄铿士、王尔德之英吉利。吾国文学界豪杰之士,有自负为中国之虞哥、左喇、桂特郝、卜特曼、狄铿士、王尔德者乎?有不顾迂儒之毁誉,明目张胆以与十八妖魔宣战者乎? 予愿拖四十二生的大炮,为之前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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