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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국 당 대 문 학

1 9 4 9 년 이후 ~ 현재

  중국 당대문학의 원류

 

20세기 중국문학은 개방이라는 줄기 속에 있다. 특히 "5.4" 신문학운동 이래로 문학의 흐름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현대화 과정 속에서 중화민족의 수천년 전통의 정신적 질곡을 타파하고, 인성의 자유해방과 국가의 민주부강, 사회의 정의, 인류의 염원을 추구하면서 생겨난 복잡한 심미사상을 솔직하게 표현해 왔다. 그리고 고전에서 현대로의 전환 과정 속에서 시대적 변천으로 생겨난 국가와 개인, 대중의 운명이라는 삼자의 관계에 대한 지식인의 인식과 실천을 반영해 왔다. 이것은 끝없는 집단적 정신운동의 한 과정이다. 20세기가 끝난 지금에도 문학의 흐름은 여전히 세기의 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백년이란 시간은 매우 풍부한 정신적 성과를 담아두기에 너무도 짧은 순간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구분한 시대사에서 어떤 문제를 완벽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1949년부터 시작되는 중국 당대문학사는 20세기 문학의 어떤 한 단계일 뿐이며, 이 개념도 "20세기문학"이나 광의의 "현대문학"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면서 점차 학술무대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따라서 중국 당대문학사의 원류에 대한 규명도 당연히 20세기문학이란 테두리 속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일찍이 1940년대에 신문학운동 중의 좌익인사들은 "5.4" 신문학운동의 전통과 항전시기의 문화적 요구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 대하여 이미 이론적으로 검토한 바 있다. 유명한 "민족형식 문제" 토론은 바로 이러한 이론적 요구를 집중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토론은 "중국 작풍과 중국 기풍(中國作風和中國氣派)"에 관한 모택동(毛澤東)의 논술과 "민족형식"의 원천을 논한 향임빙(向林氷)의 문장으로 야기된 것이지만, 그것은 "5.4" 이래의 신문학 전통이 전쟁이라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더욱 깊이 반영하고 있다. 계몽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5.4"의 문화적 전통은 일종의 획일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식인 운동이었다. 지식인들은 한편으로는 국가권력에 의해 지탱되어 온 이데올로기에 끊임없이 항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봉건의식에 침식된 대중들에게 계몽교육과 정신비판적 태도를 취하였다. 이러한 양면적 기능은 노신(魯迅)을 대표로 하는 "5.4" 신문학운동의 실천 과정 속에서 찬란한 역량을 발휘하면서 신문학 전통의 주류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1937년에 일어난 전국적 규모의 민족해방전쟁으로 지식인들의 투쟁 정신은 시련을 맞이하게 되고, 인민대중(주로 농민)이 전쟁 속에서 가장 중대한 민족해방 임무를 담당하게 됨으로써, 수천년간 억압받아 온 인성 속에서 자아희생을 통한 "미(美)의 극치"를 발출하였다. 그들은 더 이상 지식인들의 계몽 대상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피라미드식 사회문화 구조도 전도되었다. 따라서 그들의 문화적 내용과 심미적 요구는 자연스럽게 지식인들의 관심 영역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리고 항전으로 수립된 통일전선은 지식인과 국가권력의 대칭적인 관계를 미묘하면서도 복잡하게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당시의 중화 전국문예계 항적협회(中華全國文藝界抗敵協會)와 곽말약(郭沫若)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제3청(國民政府軍事委員會第三廳)은 명목상으로는 국민당정부 관할의 문예계 조직이었지만, 중국공산당 조직의 통제도 암암리에 받고 있었다. 여기에는 내부적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국가와 당파의 권력이 직접 문학 영역으로 스며드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로써 전쟁 이래 신문학의 가치 구조는 복잡한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 즉 원래 단일적이던 지식인 계몽문화 경향은 국가권력 이데올로기와 지식인의 현실 투쟁 정신, 대중의 민간문화 형태로 삼분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당시의 국민당통치구 뿐만 아니라 공산당통치구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일본침략군 점령지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문학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항전 이후의 문화계에는 새로운 구조와 규범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5.4" 신문학 전통과 항전 이래의 새로운 문화 규범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이론적 일치를 규명하려고 시도한 사람은 호풍(胡風)이었다. "5.4" 신문학 전통의 가장 열렬한 수호자였던 호풍은 "민족형식문제" 논전 중에 신문학의 계몽문화 전통과 항전 이래의 대중문화 형태 사이의 첨예한 충돌과 신문학이 받을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에 그는 신문학의 전통에 대하여 이렇게 해석하였다.

"문예대중화 또는 대중문예의 내용적 발전은 '5.4' 이래의 새로운 현실주의 이론의 발전(신현실주의 - 유물 변증법적 창작 방법 - 사회주의 현실주의)과 진보적 창작 활동으로 누적된 예술 인식 방법의 발전을 융합하였으며, 이 세 방면의 내적 연관성은 '5.4' 신문예 전통과 현실주의 전통을 형성하였다."

 

만약 이 세 방면의 내용과 순서를 바꾸어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노신을 대표로 하는 창작 실천, 소련에서 전래된 사회주의 현실주의 이론, 대중화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문학운동이다. 신문학 전통에 대한 호풍의 주장이 보편적인 것인지의 여부는 잠시 접어두더라도, 그의 이론은 바로 항전 이래의 문학 실천의 새로운 경험을 "5.4" 신문학 전통 속으로 귀납하여 신문학 전통의 내실을 기하고자 한 노력이었던 것이다. 호풍은 대중화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문학운동이 "5.4"의 전통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발전이며, "부정"이 아니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대중화운동이 반제 반봉건이라는 민주주의 임무 속에서 갑자기 변화되어 나온 것이 아니고, "발전"이라는 것은 "5.4" 신문학이 그 주도권을 "시민계층"에서 다음의 계승자에게 물려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호풍은 비록 "5.4" 신문학 전통의 수호자로 자처하였지만, "5.4"운동이 자산계급 주도의 문화혁명이라는 인식은 구추백(瞿秋白) 이래의 모든 공산주의자와 좌익인사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같은 해 연초에 모택동은 ≪신민주주의론(新民主主義論)≫에서 "5.4" 신문학운동에 대하여 이전의 공산주의자와는 전혀 다른 평가를 하였다. 즉, 그는 "5.4"를 신민주주의 문화의 발단으로 보고 "무산계급이 주도한 인민대중의 반제 반봉건적 문화"라고 규정하였던 것이다. 이로부터 "5.4" 신문화운동도 "공산주의 문화 사상, 즉 공산주의 우주관과 사회혁명론"의 영도 아래 신민주주의 문화운동이 되었다. 그렇다면 항전 이래로 공산당이 직접 참여하여 조성한 새로운 문화 현상은 "5.4" 이래의 문화 논리 발전의 필연적인 결과인 셈이다. 그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노신을 극도로 찬양하고 노신으로 상징되는 30년대 좌익문예운동을 "토벌(圍剿)"과 "반토벌(反圍剿)"의 투쟁으로 개괄하였다. 20년대 말 "혁명문학" 논쟁 중에 창조사(創造社) 등에서 노신을 비판할 때 노신은 분명 "토벌"이란 이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었으나, 모택동은 이 용어를 당시에 강서 소비에트구역에서 발생한 군사행동과 연계시켜 노신을 중심으로 하는 좌익문학운동을 모든 혁명투쟁 사업의 범위 속에 집어넣은 다음 자연스럽게 주(朱) 총사령관과 노(魯) 총사령관의 두 군대라는 설을 이끌어내었던 것이다. 모택동은 비록 호풍보다 더 높은 정치적 이론적 선상에서 "5.4" 신문학 전통을 총괄하고 그것을 항전 이래의 새로운 문화 규범과 통합시켰지만, 그의 결론은 호풍의 결론과 달랐다. 호풍은 전쟁에 직면하여 문학운동은 반드시 "신문예 전통"을 가지고 "전쟁으로 드러난 생활의 밀림"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만약 이러한 "신문예 전통"이 없다면 "전쟁에 대한 문예운동의 역할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모택동은 전쟁의 입장에서 어떻게 문학운동을 문화 군대의 현실적 요구로 변화시킬 것인가를 더욱 강조하였다. 몇 년 후에 발표한 ≪연안 문예좌담회에서의 담화(在延安文藝座談會上的講話)≫에 보이는 모택동의 문예사상과 그 논술은 ≪서문(引言)≫ 부분, 즉 두 갈래 전선과 두 군대에 관한 논술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요구를 달성하기 위해서 모택동은 신문화의 주요 실현자인 지식인의 소자산계급 속성과 서구화 된 문학 표현 양식에 대하여 하나하나 비판을 가했다. 그는 "5.4" 신문화의 중요한 기준인 서구적 문화 양식을 부정하고, 중국 대중(주로 중국 농민)의 요구라는 새로운 기준을 수립하였다. 그는 지식인들에게 오로지 자신의 지식을 버리고 노동자 농민 대중 속으로 깊이 들어가 사상을 개조하여 면모를 일신해야 비로소 새로운 문화 규범에 적응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지식인들에게 두 가지 노선을 제시하였다.

첫째, 무조건 노동자 농민 군인 대중에게 배우고, 노동자 농민 군인을 위해 봉사하여, 대중의 사상적 요구와 심미적 기호를 자신의 사업 목표로 삼아야 한다.

둘째, 무조건 전쟁에 투신하여 전쟁의 승리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즉 특정한 역사 시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정치투쟁과 정책노선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 두 가지 요구는 전시 문화라는 특수한 상황이 빚어낸 산물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의 규모와 심각성으로 "5.4" 이래의 신문화는 계몽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이전의 규범을 변화시키면서, 점진적으로 전쟁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규범을 형성시켜 나갔다. 모택동은 이 시기에 발표한 ≪신민주주의론≫, ≪모순론(矛盾論)≫, ≪실천론(實踐論)≫, ≪연안 문예좌담회에서의 담화≫ 등의 저작에서  정치, 철학, 문화 등 각 방면으로부터 이 새로운 문화 규범에 대하여 심도있고 완전한 논술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실에서 출발하여 혁명의 목표와 임무를 제시하였다. 문학사적 관점에서 볼 때, 전쟁문화 규범은 비록 "5.4" 신문화 전통의 계승과 발전을 바탕으로 수립되긴 하였지만, 그것은 결국 계몽문화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외부 작용의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전 단계의 문화 규범과 가치 관념상의 충돌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모택동이 ≪연안 문예좌담회에서의 담화≫에서 소자산계급 지식인들에게 던진 매서운 비판은 바로 이러한 문화 충돌을 반영하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 중국문학사의 흐름은 "5.4" 신문학의 계몽문화 전통과 항전 이래의 전쟁문화 전통이라는 두 종류의 전통을 형성시켰다. 모택동의 문예사상과 그것의 영향 아래에 있던 항일민주근거지와 이후의 해방구 문예운동은 바로 전쟁의 실천을 통해서 나온 것이다. 1949년 이후의 당대문학의 원류를 논하자면 이 두 가지 문학 전통의 영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것들은 상호 보완을 통한 통합적 방식이나 상호 충돌로 인한 대체적 방식으로써 당대문학에 영향을 미치고, 당대문학의 여러 가지 특징과 변증법적 발전 과정을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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